그런데 박쥐는? 필자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박쥐, 날아다니는 박쥐를 성경에서는 ‘새(bird)’로 분류하면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명기했다(신명기 14장 18절). 왜 그럴까? 성경에서는 박쥐가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곤충으로 인한 재앙이 닥칠 위험을 막아준다고 보아, 먹어서는 안 될 새,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할 새로 간주한 것이다(휘터만, 성서 속의 생태학, p.91).
과학을 아는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를 1차 숙주로 삼는다는 업그레이드 된 정보를 갖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과 동물에 공통으로 감염되는 1급 법정감염병의 원인으로서, 박쥐의 식용과정에서 사람에게 감염된 다음, 비말 감염을 통해 사람 사이에 빠르게 전파된다. 코로나19의 막강한 감염력으로 인해,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쥐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미 박쥐를 떠난 셈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엄청난 인구의 인류라는 새로운 숙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온 세상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수그러들 것이고, 우리는 코로나19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과의 싸움의 연속이었고, 많은 경우 그 싸움에서 이겨왔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런 싸움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전망하면서, 동물식용과 관련된 인수공통감염병이 핵심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바이러스는 쉽게 변종을 만들어 기존의 백신과 치료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힘겨운 가장 큰 이유다. 현미경으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지구의 기상변화,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과 같은 거대한 변화도 인류생존에 어려움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필자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냥 ‘생존’보다 ‘기쁨’과 ‘나눔’의 생존이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친구나 동료들과 마스크 없이 웃으면서, 밥 한 끼도 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러려면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다른 존재(beings)들과 함께, 잘 존재(well-being)하면서, 잘 먹고 잘 살(well-eating and well-living) 수 있을까?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