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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일본은 못한 것, ‘기생충’이 했다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2-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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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남의 기술을 배워서 소화하는 재간이 뛰어나다고들 한다. 어떤 기술이라도 ‘반세기’ 정도면 따라잡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조총 2자루를 구입했지만 반세기 후에는 유럽의 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조총을 생산하는 ‘조총대국’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이 뛰어난 재간으로 ‘명치유신’ 반세기만에 일등국으로 부상했다.

기고만장한 일본은 아시아의 여러 민족을 깔보기도 했다. 타야마 카타이((田山花袋)라는 일본 사람은 만주와 조선을 여행하고 나서 이런 글을 썼다.

“지금은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이지만 옛날에는 조선이 도시였고, 일본은 시골이었던 적이 있었다.… 역시 일본의 옛날은 조선과 똑같았다. 조선의 풍속과 느낌이 그대로 후지와라나, 헤이안 조에 모방되어 갔다.… 조선은 비유해보면 메이지 10년 전후의 상태인 것으로 생각한다.…”

‘메이지’ 10년 전후라면 1876∼1877년이다. 타야마가 이 글을 쓴 것은 1914년이다. 따라서 타야마는 조선이 일본보다 40년 정도 뒤졌다고 내려다본 것이다.

‘일등국’ 일본은 ‘차별 분업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군사와 ‘대규모 기업’은 일본이, 상업과 노동은 중국이, 논농사는 조선이, 목축업은 몽골이 각각 맡아서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었다.

10여 년 전,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의 저자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100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격차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기는커녕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케하라는 “지금부터라도 한국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지 않으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과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이후 관계가 불편해질 때마다 ‘극일(克日)’을 외치곤 했다. 그러나 ‘극일’은커녕 격차를 줄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일본이 ‘일등국’으로 부상하고 나서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해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을 비롯해서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쓸어 담은 것이다. 자그마치 ‘4관왕’이다.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수상, “92년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봉 감독은 수상자로 세 번이나 무대 위에 오르고 있었다. ‘기생충’은 세계 40여 국가에서 개봉되었다고 한다. ‘일등국’ 일본은 아마도 좀 부러웠을 듯싶었다.

그뿐인가. 방탄소년단도 빠뜨릴 수 없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에 '아미'를 만들고 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