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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그 곳에선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다-덕유산 눈꽃산행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0-02-05 13:00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일상의 따분함을 떨쳐내는 데엔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여행은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세상과 만나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낯섦은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반하여 느슨해진 삶의 끈을 팽팽하게 하여 적당히 우리를 긴장시키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따뜻한 날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겨울이 겨울다움을 잃어버려 눈 구경 한 번 못하고 이대로 봄을 맞이해야 할 것만 같아 서둘러 덕유산으로 눈꽃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 하나인 덕유산(德裕山)은 이름처럼 덕이 많고 넉넉한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어머니의 산이다. 굳이 그 의미를 생각지 않더라도 덕유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는 넓고 깊은 산이다. 예로부터 ‘눈꽃천국’으로 널리 알려진 덕유산은 겨울이면 눈길 닿는 곳마다 눈꽃과 서리꽃이 끝없이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독 덕유산에 눈꽃과 서리꽃이 많이 피는 데에는 지리적 이유가 있다. 서해의 습한 대기가 힘겹게 산을 넘으며 눈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눈꽃이 자주 피어나고 한낮엔 금강 줄기인 용담호 수면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밤새 구름이 되었다가 덕유산을 넘어 찬 공기와 만나면서 서리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람과 구름과 안개의 합작품인 눈꽃과 서리꽃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나 키 작은 관목의 가지뿐 아니라 생명이 없는 고사목이나 크고 작은 바위에까지 피어 환상적인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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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혹시 눈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그것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여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덕유산은 산허리에 안개를 휘감고 신비로운 자태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1520m)까지 편안히 오르며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은 연신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훼손된 자연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가 곧 자연 파괴의 역사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곳에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어김없이 귀중한 산림이 무참히 훼손되었다. 그 중에도 스키장 슬로프를 만들 당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생하던 수령 300~400년 이상의 주목과 구상나무 수백 그루를 옮겨 심었는데 현재 구상나무는 단 1그루도 살아남지 못했고, 주목도 겨우 50% 정도 살아남았는데 이마저도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 곤돌라에서 내려 마주한 풍경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환상적이다. 설천봉에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1614m)까지 오르는 0.6㎞ 구간은 순백의 눈꽃터널이 끝없이 이어진다. 과연 백두대간에서 겨울 경치가 으뜸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걸으며 굽이를 틀 때마다 펼쳐지는 눈부신 눈꽃의 화음에 귀 기울이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 고사목도, 마른 가랑잎을 달고 선 굴참나무도, 만물이 똑같이 순백의 눈꽃을 피운 이곳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사라진 듯한 착각이 인다. 20분이면 너끈히 오를 수 있는 짧은 산행길이 눈꽃에 홀린 사람들로 인해 마냥 늘어져 1시간 가까이 걸려 겨우 향적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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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香積峰). 향이 쌓인 봉우리라니! 향적봉은 봉우리 부근에 군락을 이룬 향나무의 향기로 인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수시로 안개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람 부는 향적봉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삶이 권태롭거나 인생이 심심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덕유산 눈꽃을 보시라 권하고 싶다.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법,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우는 그곳에 가서 순백의 눈꽃으로 마음을 씻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덕유산의 품에 안기면 한 계절 거뜬히 건너갈 수 있을 테니.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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