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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다섯 그루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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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마을 뒤 선산에 올라 성묘를 했다. 내 고향 동리의 옛 이름은 수곡(樹谷), 순 우리말로 나무골이다. 좌우로 순하게 흘러내린 산자락이 삼태기 형국을 이루며 삼십여 호 되는 지붕 낮은 집들을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산마을이다. 문 밖만 나서면 마을의 모든 길이 산자락으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성묘 가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경쾌해진다.

딱히 명절이 아니라도 나는 고향에 내려오면 시간을 쪼개어 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자주 찾는 숲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누이동생과 함께 심은 이깔나무 숲이다. 그 숲에서 떠올리는 유년의 추억은 감미롭기만 하다. 이제는 아름드리에 가까운 거목이 된 나무의 수피를 쓰다듬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거닐며 숲에 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단숨에 나를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려놓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것도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각별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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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환경보호론자인 존 뮤어는 우리가 숲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숲에 가면 그 기운을 흠뻑 마셔라. 햇빛이 나무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것과 같이 자연의 평화가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것이다. 바람이 신선함을, 그리고 에너지와 열정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걱정은 가을의 낙엽과 같이 떨어져 없어질 것이다."라고.

딱히 존 뮤어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겨울 빛이 남아 있는 이른 봄의 가랑잎 사이에서 복수초나 노루귀꽃 같은 앙증맞게 귀여운 녀석들을 만나는 것은 분명 큰 기쁨이다. 새 잎이 피어나는 신록의 숲 그늘에 앉아 산새들의 세레나데를 훔쳐 듣는 것도 즐겁다. 비에 젖은 숲의 풀 비린내를 맡으며 밤새 돋아난 버섯을 따는 장마철의 여름 숲도 좋고, 낙엽이 비처럼 흩어지는 가을 숲에서 상수리나무를 흔들어 도토리를 줍는 일도 숲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철따라 숲이 주는 즐거움의 빛깔이 다른 까닭에 그 기쁨의 크기를 견주는 일이 무색하긴 해도 굳이 그 중의 하나를 고르라 하면 나는 눈 내린 새벽의 숲의 고요함을 으뜸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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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잎을 모두 내려놓고 흰 눈을 이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엄숙한 구도자의 모습 같아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제가 차지한 허공만큼만 눈꽃을 피운 나무 사이를 거닐다 보면 과장된 몸짓으로 허세부리며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짐승도 지나가지 않은 푸른 새벽의 숫눈 위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걷노라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마냥 조심스러워 진다. 눈 내린 정갈한 새벽의 숲은 마치 숲 전체가 커다란 사원 같아서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경건해진다.

옛 인도의 아쇼카 왕은 사는 동안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그 다섯 그루의 나무란 첫째가 치유력이 있는 약이 되는 나무이다. 둘째는 열매를 맺는 유실수, 셋째는 연료로 쓰일 수 있는 땔나무, 넷째는 집을 지을 때 재목이 될 나무, 다섯째는 꽃을 피우는 꽃나무를 일컫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말은 유효하고,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귀한 가르침이다. 인간의 불행은 자연과 멀어지면서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그 누구도 부정하긴 어렵다. 저자거리에 나가 마음이 탁해졌단 생각이 들면 숲을 찾아갈 일이다. 비록 다섯 그루의 나무는 심지 못했더라도 자주 숲을 찾아 나무들의 말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그리하면 답답하던 가슴이 툭 트이고 새로운 지혜가 꽃처럼 피어 그대의 생이 향기로워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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