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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열매가 꽃보다 아름다운 '참빗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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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나름 꽃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해왔다고 자부했던 것이 오만이었을까. 올가을 단풍 구경은 제대로 때를 맞추지 못해 속절없이 끝나버렸다. 내장산에 갔을 땐 너무 일러 채 단풍이 들지 않았고, 주왕산을 찾았을 땐 너무 늦어 절정을 지나 이미 낙엽이 지는 중이었다. 자연의 때를 알아차리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함부로 뿌려대던 은행나무들이 며칠 새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 곧 겨울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비록 절정의 단풍은 보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희귀수목인 망개나무를 직접 보고, 주왕산의 깃대종인 바위 암벽에 붙어사는 둥근잎꿩의비름을 대전사 입구 상가에서 만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함께 산행을 했던 지인은 꽃 이야기만 쓰지 말고 열매에 관한 글도 좀 써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었다. 제아무리 화려하고 예쁜 꽃도 결국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임을 감안한다면 굳이 꽃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 그러마고 했다. 가을은 열매가 꽃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단풍도 곱지만 잎을 내려놓은 가지 위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열매들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매혹적이다. 꽃과 열매가 아름다운 이유는 유혹에 목적이 있다. 자신의 수분을 도와주고, 씨앗을 널리 퍼뜨려 줄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꽃과 열매의 아름다움은 눈맛에서 차이가 난다. 쓰고, 달고, 시고, 매운 열매의 다양한 '맛'처럼 열매는 모양, 색깔, 맛, 향의 꽃에 못지않은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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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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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살나무

참빗살나무도 매력적인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 중 하나다. 이름만 들으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알고 보면 주변에서 보았거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참빗살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우리가 잘 아는 화살나무와 사촌지간이다. 참빗을 만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이 나무로 참빗을 만들지는 않는다. 5~6월에 자잘한 꽃을 피우는 참빗살나무는 꽃 피는 봄보다는 단풍 드는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은근한 매력을 발산한다. 꽃 하나의 지름이 1㎝를 넘지 않고 색깔도 연한 녹색이라 눈길을 끌기에 충분치 않지만 4개의 각이 진 특이한 모양의 열매는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다. 네모나게 빚은 만두 모양의 작은 열매는 초록 잎이 단풍 들기 전부터 달려 있다가 서서히 익어 붉어져 오래오래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가을이 되어서야 진면목을 드러내는 참빗살나무는 학창시절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던 초등학교 동창이 수십 년 만에 성공하여 존재감을 자랑하듯 참빗살나무는 가을이 되어서야 매력적인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마치 솜씨 좋은 미용사가 염색이라도 한듯 곱게 물든 단풍도 아름답지만 보라색이 감도는 분홍색 열매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매혹적이다. 자줏빛 도는 분홍 열매는 좀 더 무르익으면 네 갈래의 봉합선이 갈라져 새빨간 열매가 드러나며 한껏 매력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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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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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살나무

잎이 진 뒤에도 오래도록 달려 있는 참빗살나무의 고운 열매를 보고 있으면 꽃에게만 천착하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일찍이 정현종 시인이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꽃을 보고, 나무를 보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순간순간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닉하기보다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대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팍팍한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롭고 멋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꽃의 시간도, 열매의 시간도 유한하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다. 외기가 냉랭해질수록 매력을 더하는 참빗살나무 열매를 보며 찬 겨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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