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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가을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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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문밖만 나서면 온통 단풍 세상이다. 일찍 물들었던 벚나무는 이미 잎이 거의 떨어져서 가지가 허룩해졌고, 은행나무 가로수들도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굳이 산을 찾지 않아도 문밖만 나서면 눈길 닿는 곳엔 어김없이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가을 엽서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불타오르듯 화려한 단풍을 바라볼 때면 봄꽃보다 더 곱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소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가을이 조락(凋落)의 계절임을 새삼 떠올리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잎자루 끝에 떨켜를 만들고,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여 이파리들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단풍이 든 이파리를 떨구는 것은 나무에겐 해마다 치러 내야 하는 삶의 과정이다. 건조해진 날씨에 바짝 마른 가랑잎이 되어 바람 없이도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조락(凋落)이라는 운명이다. 나무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모르고 살 수도 있지만 그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짬을 내어 단풍 든 숲길을 걸어볼 일이다. 단풍의 화려함만을 좇는 게 아니라 바람에 지는 낙엽과 바닥에 떨어진 가랑잎을 밟으며 가을 정취에 흠뻑 젖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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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지상으로 내려앉아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낙엽을 보면 자연스레 이별과 상실, 죽음과 사라짐 같은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래전부터 낙엽이 소멸과 죽음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까닭도 있겠지만, 낙엽을 보고 우수에 젖거나 비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진료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아 숲길을 산책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환자들 틈에 끼어서 무료하게 진료 시간을 기다리느니 숲길 산책이 기분전환에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숲길에서 곱게 물들어 바닥에 내려앉은 벚나무 이파리 하나를 주워 수첩 갈피에 꽂으며 나의 마지막도 저 이파리처럼 고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낙엽을 볼 때마다 나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着)을 상기하곤 한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죽음과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으면 죽음마저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낙엽 지는 숲에 들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고 했던 작가 박경리 선생처럼 호기롭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 즉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가을은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 비우라고 가르치고, 낙엽은 죽음마저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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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은 겨울이 곧 닥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꽃보다 열매가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그보다는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서둘러 챙기고 정리해야 할 때이다. 바쁜 일상에 부대끼느라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의 안부도 묻고, 자신의 근황도 전하며 서로의 쓸쓸함을 덜어내기에 좋은 계절이다.

선홍빛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서 멀리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풍을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걸었어. 잘 지내지?” “어머, 정말? 단풍을 보는데 내 생각이 났단 말이지?” 친구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란 노래도 있지만, 편지는 그만두고라도 전화라도 걸어볼 일이다. 당신의 가을이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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