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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이령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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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꽃은 피어나고 단풍은 물든다. 봄날의 새싹은 대지를 뚫고 솟아나지만, 가을날 단풍은 산정에서 시작하여 산빛을 오색으로 물들이며 하강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봉산의 산빛이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지는 걸 보며 마음은 진즉에 산에 가 있었다. 집 안에 앉아 가을을 맞이하는 것은 단풍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주말 아침 일찍 우이동 계곡을 찾았다. 등산객들로 붐비는 등산로를 벗어나 조용한 숲길을 따라 걷는다. 노란 산국과 보랏빛 쑥부쟁이, 꽃향유와 흰 구절초가 향기로 나를 반긴다. 곱게 물든 이파리들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어깨를 툭 치며 바닥으로 내려앉는 낙엽 한 장에도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고 떼어놓는 발걸음도 신중해진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시나브로 떨어지는 물든 이파리들이 수면 위로 내려앉아 물결을 따라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맴을 돈다. 건너편 숲속에선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경 읽는 스님의 목탁 소리처럼 들려오고, 수시로 부는 바람은 숲의 고요를 헤집는다. 나무 사이로 비껴드는 햇빛은 순하고 바람에 묻어오는 꽃향기는 은은하면서도 달콤하다. 겨우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가까운 숲에 왔을 뿐인데 아주 멀리 여행을 온 나그네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 귀에 들리는 소리가 하나하나가 낯설고 새로워서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눈을 반짝이게 된다.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차분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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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목에선가 보랏빛 꽃 무리를 만났다. 교목 사이로 비껴드는 햇볕을 받으려는 듯 빳빳하게 꽃대를 세우고 자잘한 꽃들을 촘촘히 달고 선 모습이 꽃으로 쌓은 탑 같다. 꽃향유다. 꽃 앞에 쪼그리고 앉으려는데 뒤영벌 한 마리가 날아와 꽃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곧바로 부지런히 꽃 사이를 오가며 꿀을 빠는 데에만 열중한다. 꽃들이 사라지기 전에 한 방울의 꿀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 벌로서는 나 같은 구경꾼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꽃향유와 배초향을 자주 헷갈린다. 두 꽃 모두 꿀풀과로 보라색이고 꽃이 피는 시기도 같은 가을이라서 얼핏 보면 쉽게 분간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세밀하게 관찰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꽃이다. 꽃향유는 꽃차례에 달린 꽃이 한꺼번에 피어 촘촘하고 꽃차례의 한 면이 칼로 베어낸 듯 칫솔처럼 꽃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반면에 배초향은 하나하나의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이 빠진 것처럼 허술하고, 꽃차례 전체에 둥그렇게 꽃이 핀다.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꽃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하던 일상이 각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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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다르게 표현하면 기억을 쌓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새로운 기억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아름다운 것은 내가 모자를 걸어 놓은 곳에 있다.”라고 했다. 일상이 우울하고 따분해지면 나는 무작정 집을 나선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숲을 찾는 나는 가까이에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예이츠의 말처럼 아름다운 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굳이 산을 찾지 않더라도 집 가까이에 있는 소공원이나 산책로를 따라 걷기만 해도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길에서, 소공원에서, 숲에서 만나는 풀과 나무와 꽃들이 그때, 그 순간에, 그곳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이다. 좋은 삶이란 바로 지금, 오늘을 잘 사는 것이다. 당신의 가을은 무사하신가. 아직 가을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장 집을 나설 것을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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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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