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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44년

채명석 기자

기사입력 : 2022-09-2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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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장
지난 2013년 발간한 대우조선해양 사외보에는 ‘찬란한 역사’라는 주제로 회사의 탄생 과정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새롭다.

1978년 8월 31일(한국 시간) 뉴욕 시내의 한 호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서울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매우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남덕우 부총리가 직접 발표를 했단 말이지….” 그리고 한동안 전화기 저쪽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귀국하기 전까지는 아직 최종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만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혀두도록 하게”라고 말을 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미국으로 오기 전 김 회장은 김용환 재무부 장관과의 만남을 통해 대우는 옥포조선소를 인수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기 때문에 그 사안은 일단락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 부총리가 직접 대우가 옥포조선소를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옥포조선소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를 사업 주체로 1973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업이 시작되자마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유조선에 대한 발주수요가 급감하고, 이에 따라 국내외의 자금조달이 난항을 겪으면서 5년이 지난 1978년 현재까지 겨우 30%의 공정 밖에 진척이 안 된 상황이었다. 정부로서는 경제개발계획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사업 주체를 바꾸어야만 했다.

이에 정부는 1978년 4월부터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 옥포조선소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근래의 조선업 경기가 최악의 상황인지라 이를 선뜻 수락하는 기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자 이미 제안을 거절한 대우그룹에 떠넘기듯 옥포조선소를 넘긴 것이다.

김 회장은 난감했다. 거액의 건설자금 조달도 문제였고, 설사 완공을 시켰다 해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가 더욱 큰 문제였다 하지만 부총리가 직접 발표한 이상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는 일이었다.
김 회장이 귀국하자마자 그룹 임원 회의가 열렸고, 이후 수 차례 진행됐다. 결론은 옥포를 조선소를 중심으로 대단위 기계 공업단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그 계획안을 들고 당장 김용환 재무부 장관을 찾아갔다. 계획안과 함께 산업은행이 전체 자본금의 49%를 출자하며 간접 지원 시설 공사의 책임을 맡는다는 조건을 붙였다. 정부는 김 회장의 계획을 모두 수용했다. 그리고 9월, 대우는 옥포조선소의 앞날을 이끌어갈 사업 주체로 확정되었다.

인수인계 절차를 마친 후 한 달여인 10월 28일. 김 회장, 홍인기 사장, 조병규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대우 임직원 및 주민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우조선 창립기념식을 거행했다.

정부는 국가 경제 위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 옥포조선소는 민간기업 대우에 떠넘겨졌다. 대우는 옥포조선소를 세계 3대 조선소로 키워냈다. 성장기에는 두 기관이 환상의 파트너십으로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대우그룹 해체 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대주주가 되면서 파트너십이 모두 사라졌다. 산업은행 출신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 돈줄을 쥐고, 최고경영책임자(CEO) 선임 권한도 움켜쥐었다. 하지만 비리와 청탁, 회계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2017년대 중반에는 자금 부족으로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까지 처했다. 누구 잘못인데, 산업은행은 인정하지 않고 늘 대우조선해양을 탓했다.

지난 26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44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2대 주주로 남으니 매각이 이뤄진다고 해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건 아니다. 어쨌건 직접 경영에 개입은 안 할 테니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다행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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