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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한 교수의 상상주택정책] 일본 버블붕괴 이후, 주택의 공급과잉과 부담가능성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


일본의 대문학가인 나츠메 소세키는 죽을 때까지 셋집에서 살았다. 사망 2년 전인 1914년에 ‘문사의 생활’이란 글을 남겼다. “세간의 소문대로 내가 엄청난 부자라면 이런 더러운 집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매월 세를 내면서 세상 소문을 듣고 있으니 쓴 웃음이 절로 난다.....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건 다다미가 없는 마루다.” 소세키는 월세로 단층 전통 가옥에서 살았다. 많은 일본인들도 세 살이 했다. 깨끗한 내 집 소유는 그의 꿈이었다.
전쟁 중인 1941년에 일본 정부는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하여 ‘차지법 · 차가법’을 개정했다. 세대주가 전쟁터에 나간 후에, 남은 가족들이 셋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집세 인상 통제와 계약기간 연장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택 공급이 한정되었던 종전 이전에 주택 문제는 주로 집세 문제였다.

일본의 대다수 농지는 지주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소작농들은 수확한 미곡의 60% 가량을 소작료로 지불하고 있었다. 전쟁 후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는 농지개혁을 주도했다. ‘농민해방지령’이 발표되고 1946년 ‘자작농 창설 특별조치법안’이 시행되었다. 이 개혁안으로 총 농지 면적의 46%에 해당하는 소작지를 지주들로부터 강제적으로 매입하여 소작농에게 저가로 매각했다. 이때부터 토지 사유화의 의식이 일본 국민들에게 자리잡게 되고, 토지 매매는 점차로 활발해진다.

종전 이전의 일본 경제가 군수산업 주도로 성장했다면, 전후 경제의 성쇠는 대규모 주택 공급 등 부동산 시장과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 이후, 세 차례의 부동산 버블이 발생했다. 이 버블을 살피면 주택 시장과 정책의 외적 요인과 내적 내용을 읽어낼 수 있다.

제1차 버블은 1960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소득배증계획’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소득배증계획’은 10년 동안 실질적 국민소득을 두 배 이상 높이기 위한 경제계획이다. 오사카 중심으로 태평양 연안의 거점을 산업 도시로 개발했다. 석유 화학, 철강 등의 콤비나트가 건설된다. 1966년 GNP가 7년만에 2배로 증가하여 이 계획은 초과 달성된다. 이 계획에 의해서 일본 경제 성장의 토대가 구축된다. 일본 경제의 급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산업 용지 가격도 급등하게 된다. 1961년의 지가는 전년대비 42.5% 급등한다. 한국도 개발연대 시대에 부동산이 급등한 바가 있다.
제2차 버블은 1972년 다나카 카구에 내각의 ‘일본 열도 개조론’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이 개조론의 목적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연안부터 산간벽지까지 골고루 분배이었다. 공업지역을 일본 전역의 거점 도시로 분산하고, 도시 사이를 신간선과 고속도로로 연결했다. ‘인간과 녹지 그리고 산업이 화합하여 인간이 주인공이 된다’는 ‘뉴 커뮤니티’ 슬로건을 걸었으나, 결국 토지 버블만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하는 것보다 토지를 갖는 것이 최고’라는 의식이 퍼졌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개발 정책으로 전국에 걸쳐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조성하고 공공 기관을 이전했지만, 결국 전국 토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제3차 버블은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G5는 달러의 가치 상승이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로 인식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을 유도하며, 이것이 순조롭지 못할 때는 정부의 협조 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를 합의했다. 급격한 엔고(円高) 영향으로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하락함에 따라서, 일본 정부는 대규모 금융완화정책과 저금리 정책을 실시한다. 1983년 연 5% 금리가 1987년 연 2.5%, 1989년 초에는 초저금리로 내린다. 시중에 필요 이상의 풀린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도쿄 도심지역의 지가는 1987년 한 해 동안 무려 68.8% 급등하게 된다. 1986~1991년까지 51개월 동안 광란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계속된다.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서둘러 고금리와 통화 긴축 정책을 시행한다. 금리를 연 6%까지 급격히 인상하고,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는 ‘부동산 관련 융자 총량 규제제’를 도입한다. 1987년 이후 연평균 10%를 넘던 통화 공급 증가율이 1991년에는 2.6%, 1992년에는 0.1%로 감소하게 된다. 1990년 1월 주식가격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 이후 자산 디플레이션에 의하여 금융자산과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 하락하게 되면서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초래된다. 그 이후 장기불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 자산 급등과 붕괴에 대한 우려가 국내외적으로 가중되고 있다. 제3차 버블, 붕괴 그리고 그 이후를 리뷰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지나친 공급 때문입니다. 팔리지 않고 남은 물건이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축 아파트는 계속 올라갑니다.” 도쿄에서 사업하는 한 유명한 부동산 업자의 말이다. 실수요자가 없는데, 신규 주택의 공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의 자가보유율은 60%이다. 민간임대주택 비율이 30%,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7%, 급여주택 등 기타 비율이 3%이다. 한국도 이와 비슷하다. 한국은 자가보유율 60%, 민간임대주택 비율 32%, 공공임대주택 비율 8%이다. 급여 주택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직원 복지용 임대주택이다. 일본과 한국의 주택 유형 비율은 약간의 등락은 있으나, 오랜 기간 동안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해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한국의 주택 시장 특성과 가장 유사했던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주택 시장과 정책은 미래 한국의 주택 정책에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 주택 시장은 아직도 잠잠하고 고요하나, 한국 주택 시장은 한창 버블 논쟁이다. 서로 반대 상황이다. ‘몇 년 한국을 선행한다’고 알려져 온 일본의 주택 시장과 정책을 살펴보고, 그 메시지를 찾아보자.

첫째, 1950년 이후 50여 년간 일본의 주택 정책은 ‘정부 주도’와 ‘자가 촉진’을 목표로 일관성을 가지고 계속되어 왔다. 1950년에 주택금융공고의 설립으로부터 일본주택공단 설립, 공영주택법 제정으로 ‘전후 주택 체제의 세 기둥’으로 평가되는 정부 주도 주택 공급 시스템을 확립한다. 1960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들어서면서 주택 공급이 획기적으로 확대된다. 1966년에 주택건설기본법이 제정되고 ‘주택건설5개년계획’이 시작된다. 1970년까지 ‘1가구 1주택’, 1975년까지 ‘1인 1실’ 목표를 달성한다. 40년 동안(1966년~2005년) 총 제8차 계획 기간에 매년 120만호~160만호, 총 57,504천호가 공급된다. 1968년 전국 주택보급률 100%가 달성되고, 1973년에 전국의 모든 지자체별 주택보급률이 100% 달성된다. 1990년에는 목표 주택보급률이라 할 수 있는 110%에 이른다. 일본주택금융공고는 자가보유율을 60%대로 올리는데 있어서 제일 지지대였다. “장기·저리·고정”이라는 주택 금융의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하면서 1950년~2006년에 1,947만호 주택에 융자하고, 주택 건설 실적의 약 30%에 금융 지원을 했다. 800만 단카이세대는 30년 장기대출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주택 정책의 기조는 ‘민간 중심’, ‘자유 시장’으로 변화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2006년에 일본주택금융공고를 폐지하고, 주택공급 로드맵인 ‘주택건설5개년계획’을 2005년 제8차 계획으로 종료한다.

이러한 주택 정책의 일관성은 일본의 안정된 정치 체제에 기인하는 바가 많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보수 ‘자유민주당’은 1993년까지 38년동안 국회와 정부를 장악하고 장기 집권한다. 이 기간에 급속한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그리고 도시화 과정에서 주택 수요는 폭증하게 된다. 이에 대응하여 자민당 정부는 일관성을 가지고 택지 및 주택 공급을 주도하고 자가 촉진용 공적 자금을 대대적으로 지원한다.

한국은 해방이후 우선, 먹는 문제가 이슈였다. 60년대 이후 ‘산업화와 수출입국’이 국가적 과제이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있었으나, 일본의 경우와 같은 ‘주택건설5개년계획’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주택 문제는 민간의 영역에서 해결되었다. 21세기 들어와서는 집권 세력의 이념에 따라서 주택 정책이 독단적으로 끌려간 측면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전반기에 주택공급 억제정책은 뼈아픈 실정이었다. 주택 가격 폭등으로 인하여 급기야 대규모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제2기 신도시 계획과 제3기 신도시 계획을 추진하였다.

주택 대란인 현 시점에서 중장기적인 ‘주택 정비 및 관리 (5년) 계획’을 마련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주택 공급은 장기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장기적 차원이 중요하다. 또한 주택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득실이 매우 첨예하여, 그들 사이에 상생이 핵심이다. 여야 합의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실효성 있게 수렴하여 마련된 계획이어야, 지속가능하고 정권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래야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현재 일본의 주택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117%로 한국에 비하여 13% 더 높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주택보급률은 8% 수준이며, 자유 시장 체제에서 적정 주택보급률은 약 110%이다. 일본은 주택 과잉 공급 상태이다. 1990년 제3차 버블 붕괴 이후에도 매년 120만호 공급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근에는 약 100만호 공급하고 있다. 실수요자가 없는데도, 신규 주택 공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주택 과잉 공급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이다. 주택 과잉 공급으로 인하여 대규모로 빈집이 발생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보면 17%가 빈집이다. 빈집은 일본의 사회적, 경제적 암적 존재이다.

주택 공급 과잉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경제의 부동산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노동인구의 약 25%가 주택 건설업과 연관돼 있다. 10%에 불과한 주택 건설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준 건설업자’인 새시, 커튼, 인테리어, 가구 등 제조업 종사자들의 경제활동을 고려할 때에, 아파트 건설을 중단할 수 없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주택 산업의 탄력성이 붕괴한 것이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주택 산업은 진퇴양난이다.

한국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 경우, 2030년경이 되면 주택보급률 110%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주택 재고량을 어떻게 적정하게 관리해 나가느냐?가 이슈일 것이다. 최근에는 매년 약 50만호를 공급하여 오고 있고,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도 이 정도이다. 주택보급률 110% 시대가 되면, 주택 시장은 1:1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사업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신규 주택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주택 건설 산업은 이와 같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 확보가 중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일본의 선례와 같이, 진퇴양난이 될 수 있다.

셋째, 버블 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일본의 주택 가격은 붕괴 후 부담가능한(affordable)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버블 붕괴 후, 도쿄권의 분양공동주택 평균가격은 4억 원~5억 원(4,000~5,000만 엔)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권의 PIR(주택 가격과 가구 년 소득의 비율)은 5-6배이다. 유엔 해비타트가 권고한 PIR 5배로 볼 때에, 일본 주택 가격은 적정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가격은 버블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약 10억)은 도쿄권의 2배이다. 최근 서울의 PIR은 15~20배로 급상승하여, 도쿄권 PIR의 3배, 유엔 권고치 PIR의 약 3배인 수준이다. 서울 강남구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도쿄 특별구(중심구)의 분양공동주택 평균가격은 2013년 기준으로 6억 원(6천만 엔)이며, PIR은 약 10배이다.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인 1989~1991년에는 1억 엔을 초과했으며, PIR 17~18까지 치솟았다. 현재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버블 시 동경 최고가 아파트 지역의 평균 가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주택가격에는 짙은 거품이 끼어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적정한 PIR은 5-10배로 판단된다. 주택가격의 하향 연착륙이 중요하다.

“‘내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훌륭한 집을 지었다, 토지와 가옥을 매매하여 돈을 벌어놓았다’는 등 세상에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나츠메 소세키는 말했다. 집 장사하여 돈 번 사람들과 ‘다다미가 있는 마루’를 선망하며 셋집에 사는 소세키의 대비는 주택 시장의 빛과 그림자이다. 일본인들은 한 때 부동산 버블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붕괴이후 부채 국가가 되고 아직도 장기 불황이 허덕이고 있다. 주택은 과연, 이기인가 흉기인가? 성호 이익은 “백성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말했다. ‘이로운 주택’은 시장 체제의 자유와 공공 관여의 공공선을 영양분으로 피어난 소산이다.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전 주택도시대학원 원장)
사진없는 기자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전 주택도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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