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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저만치에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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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바람이 차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가 코앞이건만 바깥 풍경은 여전히 겨울빛이다. 박수근의 그림 속 나목들을 닮은 나무들도 발을 오그리고 있다. 이따금 회색빛 구름이 먼 나라의 소식처럼 눈발을 흩뿌리고 간다. 먼 산 풍경이 궁금하여 창문을 열면 와락 달려드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오싹한 한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어 바람 앞에 펼쳐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아득하여 멀기만 한 봄이다.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분명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여느 해처럼 천지간에 봄빛을 흐드러지게 풀어놓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들떠 있는 탓이리라.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봄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썼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도 나는 젊어서 마음이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소엽 시인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게 되어 있나니 서러워 마라 봄은 겨울을 인내한 자의 것이거늘'이라고 했다. 영국 시인 P.B.셀리가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봄을 기다리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고 있는 헐벗은 나무들과 흙 속에서 푸른 물감을 끌어모으는 풀뿌리들, 그리고 산골짜기에 허옇게 얼어붙은 계곡물들, 그리고 땅속에 굴을 파고 겨울 식량을 축내고 있는 오소리들, 겨울잠 자는 개구리들, 벌레들…. 이 모두가 봄이 오면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처럼 일제히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바야흐로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새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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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지루할 때는 걷는 게 상책이다. 촉수 잘린 개미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정처 없이 걷는다. 때로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중랑천변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천변을 따라 걷기도 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을 풍경을 보거나 천변을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혼자 걷다 보면 심심하기도,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그 쓸쓸함이 때론 속으로 깊어지고 넓어지게 한다. 걷다 보면 어느덧 마음속 조바심은 사라지고 겨우내 무뎌진 감각들이 살아나서 하늘과 땅, 물과 나무와 어우러져 나 자신도 자연과 동화되어 그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들의 겨울눈을 살피거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봄을 기다리는 로제트 식물들의 안부를 챙기다 보면 이미 겨울 속에 봄이 들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흔히 봄을 사계절의 시작이라고 말하지만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겨울이라는 잉태의 계절이 있기에 비로소 봄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듯이 추운 겨울을 견딘 자만이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매화는 추위가 매울수록 향기가 짙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봄이 찬란하지 않다면 혹독한 겨울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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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로 신음하는 중이고, 마스크를 벗고 맘껏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여도 저만치에 봄이 오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네루다는 '꽃은 스스로 맑게 준비해서 꽃을 피운다'고 했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저만치에 찬란히 오고 있을 봄을 맞이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 맑아질 일이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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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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