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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겨울 북한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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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벗들과 북한산의 원효봉을 올랐다. 도봉구로 이사 온 뒤로는 날마다 바라보며 사는 친숙한 산이지만 겨울 산행은 처음이다. 이 찬 계절에 산을 오르는 일은 고행과도 같다. 얼핏 생각하면 잎도 지고 꽃도 없는 겨울 산을 오르는 일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냉기를 품은 북풍과 눈비에 얼어붙은 길은 자칫하면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굳이 겨울 산을 오르는 까닭은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걸어서 산의 품에 안기는 것은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방학동 집을 나설 때마다 바라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고양시 효자동 쪽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희끗희끗한 눈에 덮인 바위 봉우리들이 겨울 산의 정취를 더하며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원효봉(505m)은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겨울 산행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살얼음 낀 개울을 건너듯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호흡을 조절하며 자신의 걸음에 집중하며 걷다가 숨이 차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스쳐 지나온 나무들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물푸레나무, 노간주나무, 가죽나무, 노박덩굴, 개옻나무, 진달래와 철쭉까지….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친구들의 이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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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숨이 차면 멈추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산행은 우리 삶의 모습과 흡사하다. 세상의 문제는 대개 멈출 줄 모르는 데서 생겨난다. 명절에 재미 삼아 치는 화투 놀이 중에 고스톱이란 게 있는데 고스톱에서 중요한 것은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욕심을 내어 고(GO)를 외치다 보면 이겼던 게임을 망친다. 이처럼 산을 오를 때도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여 멈출 때를 놓치고 무리하다 보면 탈이 나기 쉽다. 그러므로 체력 안배를 위해 산을 오르는 도중의 휴식을 위한 멈춤은 매우 중요하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조심조심 산을 오르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일상의 근심 걱정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렇게 생각이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즐거움, 새로운 생각들이 찾아올 것이다.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부르통은 ‘걷는 사람이 시간의 부자’라고 했다. 산을 오르며 그동안 부족했던 자신과 대화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소중하지만 힘들게 걷고 난 뒤의 찾아오는 허기와 달콤한 피로는 별것 아닌 음식에도 침이 고이게 만든다. 원효봉에 올라 겨울 북한산의 경치를 감상하고 바람을 피해 자리를 잡고 저마다 싸 온 음식을 펼쳐놓고 요기를 했다. 산을 오른 뒤에 하는 식사는 늘 최고의 만찬 부럽지 않은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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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우리는 세상살이에 부대끼느라 고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저마다 견디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기도 하지만 일상에 치이다 보면 새로운 곳에 눈길을 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일상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게 상책이다. 가까운 숲이나 산을 찾아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엔 어느덧 고요가 찾아온다. 겨울 산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하산하는 발걸음은 지쳤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눈에 담은 겨울 산의 풍경과 코끝을 스치던 바람 소리, 고요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의젓한 모습이 고스란히 헛헛하던 마음의 곳간을 채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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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과 산을 오르다 보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함께 걷다 보면 서로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 설에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나눠 먹진 못했지만 이제 입춘이 지났으니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다. 잔설이 스러지듯 우리의 발자국이 희미해질 즈음이면 산은 봄빛으로 또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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