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부패 혐의 최측근 ‘읍참마속’…트럼프 정부 상대 ‘협상가’ 잃어
네덜란드 1위 조선사·체코 미사일 펀드도 줄줄이 ‘뇌물 스캔들’
네덜란드 1위 조선사·체코 미사일 펀드도 줄줄이 ‘뇌물 스캔들’
이미지 확대보기월스트리트저널(WSJ)과 네덜란드 해양 전문지 드레지와이어(Dredgewire) 등 주요 외신은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의 사임과 유럽 방산 기업들의 잇따른 부패 수사 타결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권력 핵심 강타한 ‘원전 비리’…젤렌스키, 최측근 쳐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평화협상 수석대표인 안드리 예르마크 실장이 국영 원자력기업 ‘에네르고아톰(Energoatom)’ 관련 부패 수사가 확대되자 28일 사임했다. 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반부패 수사당국은 예르마크 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수사는 에네르고아톰 계약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기업을 압박해 1억 달러(약 1460억 원) 규모의 뒷돈을 챙기려 했다는 혐의에서 시작했다. 이미 장관 2명이 해임된 데 이어 권력 서열 2위인 예르마크 실장까지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티모피 밀로바노프 키이우 경제대학 총장(전 경제부 장관)은 WSJ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투명성을 보여주려는 의지”라며 “러시아와 미국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예르마크는 집권 2기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 채널을 구축해 온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커트 볼커 전 미국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는 “예르마크는 까다롭지만 일을 되게 만드는 ‘해결사(operator)’였다”며 “미국이 종전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는 시점에 협상 사령탑이 사라진 것은 우크라이나에 큰 리스크”라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최대 조선사 다멘, 해외 뇌물 혐의로 임원 유죄 합의
유럽 방산시장의 또 다른 축인 네덜란드에서도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네덜란드 검찰은 같은 날 다멘(Damen) 조선소의 이사 2명과 유죄 협상(플리바게닝)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다멘은 연 매출 30억 유로(약 5조 1100억 원)를 올리는 네덜란드 최대 조선사이자 군함 건조가 가능한 유일한 해양 조선소다.
검찰 조사 결과 다멘 측은 브라질, 퀴라소,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에서 선박 수주를 대가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허위로 꾸민 혐의를 받았다. 특히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임원에게 스위스와 중국 계좌를 통해 35만 달러(약 5억 원)를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네덜란드 유력지 NRC 보도에 따르면, 마케팅 이사 샌더 반 O.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인정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들였다. 퀴라소 항만청(CPA) 전 국장 역시 다멘으로부터 22만 유로(약 3억 7400만 원)를 받기로 약속한 혐의로 합의했다.
다멘은 이와 별도로 불법 선박 부품을 수출해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제재를 위반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이는 유럽 방산 기업들이 겉으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뒤로는 제재를 어기는 ‘이중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코 ‘푸틴을 위한 선물’ 프로젝트 중단…공급망까지 썩었다
부패의 사슬은 무기 지원을 위한 민간 모금 활동에까지 뻗쳤다. 체코의 우크라이나 지원 단체인 ‘푸틴을 위한 선물(Gift for Putin)’은 이날 플라밍고 로켓 구매를 위한 1250만 코루나(약 8억 8200만 원) 집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로켓 제조사인 ‘파이어 포인트(Fire Point)’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비리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티무르 민디치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민디치는 젤렌스키 정권 초기 막후 실세로 불렸던 인물이다.
달리보르 데덱 이니셔티브 대표는 “기부금이 당초 계획대로 쓰일지 심각한 의구심이 든다”며 “대체 공급처를 찾기 전까지 자금 집행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은 현재 파이어 포인트가 무인기 가격을 부풀려 공급했는지 여부도 함께 수사하고 있다.
‘K-방산’ 수출 가도, ‘준법 경영’이 핵심가치로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를 타고 호황을 누리던 글로벌 방산시장이 ‘부패’라는 암초를 만났다. 예르마크 실장의 낙마와 다멘 조선소의 뇌물 스캔들은 전시(戰時) 상황에서 느슨해진 감시망을 틈타 정경유착과 뒷돈 거래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의 투명성을 강도 높게 검증하는 상황에서 터진 이번 악재는 향후 휴전 협상이나 전후 재건 사업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지를 좁힐 가능성이 크다. 서방의 ‘지원 피로감(Ukraine Fatigue)’을 가중하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수출 잭팟을 터뜨리고 있는 한국 방산 기업들에도 큰 주의를 요한다. 방위산업은 속성상 정부 간 거래(G2G)가 많고 거액이 오가기 때문에 로비와 리베이트 유혹에 취약하다. 최근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로 수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현지 에이전트(대리인) 관리와 자금 집행 투명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제 단순한 ‘성능’과 ‘납기’를 넘어 ‘투명성’과 ‘윤리 경영(Compliance)’을 핵심 경쟁력으로 요구한다. 다멘 조선소 사례에서 보듯, 과거의 관행적 영업 방식이 수년 뒤 회사의 존립을 뒤흔드는 사법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