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업계, AI 서버 증설 위해 메모리 선점 경쟁…고용량 낸드 '완판'
차세대 V9 낸드까지 '입도선매'…소비자 시장 가격 인상 압력 고조
차세대 V9 낸드까지 '입도선매'…소비자 시장 가격 인상 압력 고조

17일(현지시각) 반도체 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이번 가격 급등의 핵심 원인으로 AI 인프라 구축과 직결된 공급망 경색을 꼽았다. 디지타임스는 "공급 부족이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공격적인 구매를 촉발했으며, 특히 고적층 3D 낸드 제품은 거의 완판됐다"고 보도했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빠른 읽기 속도와 대용량 다이(die) 특성을 갖춘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한 탓이다.
시장 곳곳에서는 이미 공급 부족을 경고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 산하 샌디스크는 지난 9월 약 10%의 낸드 가격 인상을 추진했으며, 마이크론은 단기 공급 부족을 우려해 D램과 낸드의 판매 견적을 일시 보류하고 수급 상황과 물량 배정을 재검토에 들어갔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근본적인 문제인 근거리 저장 장치(nearline HDD)의 공급난에 직면하면서, 2026년 도입 예정이던 QLC(Quad Level Cell) 기반 기업용 SSD로의 전환 계획을 앞당기고 있는 점도 낸드 수요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현재 넘어 미래 물량까지…'입도선매' 나선 큰손들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차세대 제품에까지 번지고 있다.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가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9세대 280단 V낸드(V9) QLC 제품이 향상된 집적도와 비용 효율성을 바탕으로 클라우드 고객들의 조기 물량 확보 경쟁을 촉발, 사실상 '완판'이라고 전했다.
트렌드포스가 삼성의 V9 QLC 양산 시점이 2026년 상반기로 다소 늦춰질 수 있다고 분석했음에도, 고객사들은 확정된 양산 일정과 관계없이 미래 생산 능력까지 선점하며 절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클라우드 업계가 앞으로 수년간 이어질 AI발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공격적으로 미래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부품업체 실적서도 확인된 '공급 부족' 신호
기업 시장의 메모리 '싹쓸이' 현상은 소비자 시장에 연쇄적인 가격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웨이퍼 생산 능력을 D램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서버용 제품과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우선 할당하면서, 소비자용 DDR4, DDR5, NVMe SSD 등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클라우드 업계의 주문이 계속 늘어나면 연말연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NVMe SSD의 파격적인 할인 행사는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크다.
컨트롤러 전문기업 파이슨의 실적은 이러한 시장 상황을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한다. 파이슨의 지난 8월 매출은 59억3400만 대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급증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파이슨은 실적 호조의 배경으로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협력 확대를 중심으로 한 비소비자용 제품 수요 강세와 낸드 제조사와의 협력 강화를 꼽았다. 이러한 흐름은 업계 전반이 기업용 스토리지 수요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AI는 클라우드 스토리지의 위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가격 결정의 주도권은 수요처에서 다시 플래시 메모리 공급사로 넘어가고 있다. PC 업그레이드나 신규 저장장치 구매를 계획하는 소비자라면, 앞으로 소매 시장의 가격 변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이 나타났을 때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머지않아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상승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