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보타주 사건으로 해저 통신망 보호 필요성 부각
케이블 생산 및 부설선 확충에 보조금 지원 계획
케이블 생산 및 부설선 확충에 보조금 지원 계획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상 국제 통신의 99%를 해저 케이블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저 케이블의 생산과 설치는 주로 민간기업이 주도해왔다. 최근 국제 정세와 안보 환경의 변화로 일본 정부의 통신 및 경제 관련 부처는 해저 케이블 산업을 국가안보의 우선순위로 격상시키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전 세계 해저 케이블의 약 90%는 일본의 NEC, 미국의 SubCom, 프랑스의 Alcatel Submarine Networks에서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일본 정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케이블 부설선에 대한 투자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선박 한 척을 건조하는 데는 수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케이블 부설선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대규모 설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 주요 해저 케이블 사업자들은 케이블 생산부터 설치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반면, 일본 사업자들은 케이블 생산 후 설치를 위해 외국기업의 선박을 임대하거나 통신 제공업체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들의 케이블 부설선 확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집권 자유민주당은 지난 2월 정보통신 부문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특별팀을 출범시켰다. 이 팀은 이르면 4월에 정책 권고안을 발표하고, 통신 및 경제 부처와 협력하여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해저 케이블 시장은 인공지능(AI)의 부상으로 인한 글로벌 통신 수요 증가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메타와 구글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늘어나는 데이터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새로운 해저 케이블 건설에 투자하고 있다.
도쿄에 본사를 둔 JMA 리서치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해저 케이블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2 회계연도 3940억 엔에서 2028 회계연도 4780억 엔(약 32억 달러)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경제권에서 많은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어, 일본 기업들에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의 해저 케이블 분야 진출 확대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개발 원조의 일환으로 해저 케이블을 부설하며 이 분야에서의 경험과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이 누려온 우위가 점차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최근 타이완 인근과 발트해에서 발생한 해저 케이블 손상 사건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들 사건에는 중국과 러시아에 연계된 선박들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의심스러운 선박을 식별하기 위해 발트해에서 순찰을 시작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케이블 보호를 위해 약 10억 유로(약 11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타이완 역시 해양 순찰을 강화했다.
그러나 해저 케이블의 의도적인 손상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노르웨이 당국은 지난 1월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승무원이 탑승한 선박을 억류했다가 나중에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한 바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해저 케이블에 대한 위협이 국가 간 '회색 지대' 분쟁의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직접적인 군사충돌을 피하면서도 상대국에 경제적·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해저 케이블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중요 인프라 보호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케이블 경로의 다변화, 국제 협력 강화, 모니터링 시스템 개선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통신과 디지털 경제의 핵심 기반시설인 해저 케이블은 앞으로도 국가안보와 경제 안정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일본의 이번 정책 변화는 해저 통신 인프라를 둘러싼 국제 경쟁과 안보 환경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