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G 칼럼] 정치판의 ‘험지 출마론’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1-14 00:10

center

“사람이 살아갈 터를 정할 때에는 네 가지를 참고해야 한다. ①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②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③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④ 산수(山水)가 좋아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좋은 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중환(李重煥·1690∼1756)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논했다. 지리, 인심, 산수는 이해할 만한데, ‘생리’라는 말이 좀 까다로웠다. ‘생리’는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중환은 네 가지 중에서 ‘인심’을 지역별로 평가하기도 했다.

“평안도는 인심이 순박하고 후해서 제일이다. 그 다음은 풍속이 진실한 경상도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백성이 모두 굳세고 사납다.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으로 몹시 어리석다.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좋지 않은 일에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들판 마을의 경우 백성의 재물이 보잘것없다.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익이 될 만한 것만 좇는다.”

그러나 이 평가에는 ‘전제’가 있었다. 그 전제는 간단했다.

“이는 서민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사대부의 풍속은 그렇지 않다.”

‘택리지’는 이중환이 사대부인 선비를 위해서 쓴 글이었던 것이다. 이중환은 선비가 살기 좋을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선비가 살기 껄끄러운 곳도 꼽고 있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에도 끝내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인조가 성을 나와 항복한 것도 성 안의 식량이 떨어졌고, 강화도가 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사변이 일어나면 반드시 전쟁터가 될 것이므로 살 만한 곳이 못된다.”

더 있었다.

“대구 동남쪽에서 동래 사이에는 고을이 8개 있는데, 땅은 기름지나 왜나라와 가까워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동래는 왜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첫 지점이다.”

이런 식이었다.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는 곳은 위험했다. 피해서 사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치판에서는 또 다른 ‘위험한 곳’이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험지(險地) 출마론’이다.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지역구를 ‘험지’라고 일컫고 있다.

“고향땅 영남보다 수도권 험지로 나와 달라”며 수도권을 험지로 만들고 있다. “입당 1년도 안 된 사람이 험지 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등 같은 편(?)끼리 공격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판에게는 ‘험지’가 아닌 곳은 ‘평지(平地)’다. 또는 ‘양지(陽地)’, ‘길지(吉地)’다. 그런 곳에서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에게는 나라 전체가 ‘험지’다. 이력서를 수십 번씩 내고도 탈락하는 구직자에게는 기업 전체가 ‘험지’다. 오죽했으면 '헬조선'이라는 푸념이 나왔을까. 정치판은 그런 국민은 아랑곳없이 ‘험지 출마론’을 가지고 목청들을 높이고 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