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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격세지감… 성희롱 유발죄?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9-12-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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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춘향전’을 뒤져보자.

이몽룡이 방자를 앞세우고 ‘걸헌팅’에 나선다. 광한루에 이르니, 오작교가 그럴 듯하다. 즉석에서 시를 읊는다. “하늘의 직녀가 누구냐(借問天上誰織女), 나는 오늘 흥겨운 견우로다(至興今日我牽牛).”

마침 단옷날이다. 일 년 중에서 가장 좋은 날이다. 그 좋은 날 저 멀리서 춘향이가 그네를 뛰고 있다.

“섬섬옥수로 그네 줄을 잡고 살짝 올라 발을 구르니, 뒤 단장 옥비녀, 은죽절(銀竹節)과 앞치레는 밀화장도… 겹저고리, 제색 고름이 모양 난다.”

‘짱’이 아닐 수 없다. 방자에게 불러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춘향은 이몽룡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며 버틴다. 방자가 따지고 든다.

“계집의 행실로 그네를 뛸 모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은근히 하는 게 도리에 맞다.… 홍상 자락 펄펄, 백방사 속곳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 간에 희뜩희뜩, 도령님이 너를 보고 부르시거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잔말 말고 가자.”

방자는 ‘성희롱 유발죄(?)’를 논하고 있었다. 춘향이 관중(?) 많은 ‘공공장소’에서 미태(美態)를 과시하면서 남성들이 ‘헬렐레’하도록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뻔할 뻔’이라는 주장이었다.

오늘날 같았다면, 야단났을 짓이었다. 그 자리에서 성희롱 혐의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전소설이 아닌 ‘20세기’ 말에도 ‘여성책임론’을 논한 자료가 있었다. 1994년 4월 23일자 신문에 보도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성희롱 사건 처벌에 찬성하는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4.5%가 ‘찬성한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여성은 82.5%가 찬성한 반면, 남성은 66.3%밖에 찬성하지 않고 있었다.

여론조사는 그러면서 다른 질문도 하고 있었다. ‘여성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다.

“야한 옷차림이나 유혹하는 몸짓 등 여성 쪽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1.8%가 ‘매우 동의’, 44.4%는 ‘약간 동의’라고 응답하고 있었다. 86.2%가 ‘여성책임론’에 공감한 것이다.

심지어는, 여성의 81.8%가 “여자 쪽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1세기 들어서도 ‘여성책임론’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2014년 11월 21일자 외신 보도다.

어떤 동양계 여성이 미국 뉴욕의 번화가를 5시간 동안 몸매가 다소 드러나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걸었다. 그랬더니 남성들이 휘파람을 불거나 “몸매가 죽인다”며 치근대고 있었다.

이 여성이 무슬림 여성의 복장을 하고 같은 거리를 5시간 동안 걸어봤다. 그런 결과, 남성들은 어쩌다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책임론’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적 매력’이 특별하게 있을 것 같지 않은 13살 미만 어린이를 성추행하는 경우가 그렇다. ‘똑같은 군복’을 입고 근무하는 여군에 대한 성범죄는 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아버지가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