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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전두환 ‘각하’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9-12-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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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떤 일본 사람이 쓴 글이다.

“한국의 대통령 부부가 일본을 방문했다. 영부인이 남편을 부를 때 ‘각하, 각하’라고 말해서 일본 측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미국의 의원 일행을 청와대로 초대했을 때, 대통령은 손님과 떨어져서 마련된 작은 식탁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자동차 행렬과 마주친 일이 있다. 대낮인데도 헤드라이트를 켠 경호자동차가 몇 대고 지나간 다음 오토바이에 둘러싸인 거대한 캐딜락이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의 장면과 같았다. 우호국가의 원수에게 결례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습기조차 했다….”

전두환씨의 권위는 이 정도였다. 외국 손님을 대접하면서도 ‘수라상’만큼은 따로 받고, 이순자 여사는 전씨를 ‘각하’라고 깍듯하게 받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각하’는 일본 제국주의가 ‘칙임관(勅任官)’ 이상의 문관과, 육군 소장 이상의 무관에게 붙였던 존칭이었다. 이 여사는 그 ‘제국주의 존칭’을 하필이면 일본에까지 가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하가 아니라 ‘합하(閤下)’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황희 정승을 ‘황합(黃閤)’이라고 하는 식으로, 성에 ‘합’자를 붙여서 존대한 것이다.

그 ‘각하’ 존칭은 2012년 4·11 총선 때 또 들리고 있었다. 전씨는 당시 서울 연희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투표를 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전씨에게 '추징금'에 관해서 질문하자, “아는 게 없다”고 짤막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자, 함께 투표하던 이 여사가 나서고 있었다. “각하 것은 성의껏 다 냈어요. 그것은 알고 계셔요”라고 거든 것이다. 전씨는 여전히 ‘각하’였다.

그 ‘각하’의 권위는 육군사관학교에서도 발휘되기도 했다. 2012년 6월 8일 육사 생도의 퍼레이드 행사를 참관하면서, 거수경례로 답한 것이다.

당시 보도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았다.

“전씨는 부인 이 여사와 손녀, 5공화국 핵심 인사들과 함께 재단법인 육사발전기금이 개최한 ‘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사를 방문했다가 연병장에서 열린 생도 퍼레이드 행사를 참관했다. 박종선 육사교장 옆에서 퍼레이드를 지켜보다 생도들이 단상을 지나면서 ‘우로 봐’ 구호를 외치자 손뼉만 치는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거수경례로 화답해 사열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아마도 29만 원뿐이라던 전 재산의 무려 30배나 되는 1000만 원의 육사 발전기금을 내고 얻은 ‘비싼 권위’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전씨는 지금도 ‘각하’였다.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 정확하게 40년이 흐른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호화판 오찬’을 즐기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호칭이 ‘각하’였다는 것이다.

이날 전씨 일행은 상어지느러미 수프인 ‘샥스핀’이 포함된 1인당 20만 원 상당의 코스요리를 먹었고, 와인도 곁들였다는 소식이다. 전씨의 지갑은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요술지갑’인 모양이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