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G 칼럼] ‘송년회’와 ‘망년회’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9-12-08 05:00

center
일본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친구나 친지들과 어울리며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이 ‘망년회’로 정착되었다.

우리는 달랐다. 연말이 오면 지나간 한 해를 반성하고 근신하면서 조용하게 보냈다. 일본 사람들은 ‘망년(忘年)’이었지만, 우리는 ‘수세(守歲)’였다.

따라서 망년회는 일본의 풍습이었다. 우리에게는 망년회라는 게 없었다. 그런 용어 자체가 없었다.

우리는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방과 마루·부엌·마구간·측간에 이르기까지 온 집안에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부엌의 신인 ‘조왕신(竈王神)’을 기다렸다. 조왕신이 집안 식구들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1년 동안 지켜보았다가 12월 24일이 되면 승천, 하늘에 보고한 뒤 그믐날 밤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부터 연말까지의 일주일은 조왕신의 심판(?)을 기다리며 반성하는 주간이었다. 조용하고 경건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새해의 첫날인 설날도 ‘신일(愼日)’이라고 했다. ‘신(愼)’이라는 글자 그대로 설날 역시 근신하며 보내는 날이었다. 새해가 되면 첫 쥐의 날(子日)과 돼지의 날(亥日)에는 특히 근신했다. 쥐와 멧돼지가 농작물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기원했던 것이다.

이랬던 우리가 ‘망년회’를 하고 있다.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남의 땅에 와서 거들먹거리며 요란스럽게 망년회를 한 게 우리에게도 퍼진 것이다.

망년회보다는 ‘송년회’라는 모임 명칭을 더 많이 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찌꺼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도 송년회다.

그나마 그 송년회도 ‘양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지켜왔던 ‘음력’은 온데간데없다. 우리는 그 바람에 일본 풍습에 서양 풍습이 뒤섞인 연말을 보내고 있다.

연말을 조용하게 보내야 할 이유는 더 있다. 돈이다. 풀릴 것이라던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돈 들여가며 송년회 참석하는 게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료가 발표되고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27일 직장인 1795명을 대상으로 ‘연말 지출에 대한 부담감’을 조사한 결과, 68.2%가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가장 부담이 되는 연말 등골브레이커로 ‘각종 송년 모임 회비’가 첫 번째였다.

참석 횟수에 대한 조사도 있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 남녀 62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88.5%가 ‘올해 송년회에 참석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횟수는 평균 2.4회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간소하게’ 보내겠다는 응답이 48.6%로 가장 많았다. ‘떠들썩하게’ 보내겠다는 응답은 그 절반인 29.3%에 불과했다. ‘성대하게’ 보내겠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음식점 경기는 여기에 비례해서 연말에도 껄끄럽게 생겼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