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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무역의 날’ 되돌려야 좋은 이유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9-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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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2월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연말이었다.

서울 외곽에 어떤 조그만 무역회사의 ‘봉제공장’이 있었다. 200평쯤 되는 넓은 공장이었지만, ‘임대공장’이었다.

공장에서는 퇴근시간을 훨씬 넘겨서 깜깜한 밤인데도 소녀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15∼16세쯤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도 적지 않았다.

공장 안에는 연탄난로 3대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난로는 싸늘했다. 연탄값 아끼려고 난방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소녀들은 그 추운 공장에서 입김으로 손가락을 녹이며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조명마저 흐릿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소녀들은 그 추위 속에서도 졸고 있었다. 졸면서 하는 바느질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작업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급해진 공장장이 소녀들을 재촉했다. 방법은 쉬웠다. “얘들아, 1시간 후에 빵과 우유가 도착할 거야.”

공장장의 한마디에 바느질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빵과 우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소녀들은 배가 고팠던 것이다.

작업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무역회사는 어렵게 ‘선적 기일’을 지킬 수 있었다.

당시 소녀들의 봉급은 쥐꼬리보다도 얇았다. 그래도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도우려고 ‘밤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헝그리 정신’이었다.

그해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 무역회사의 수출실적은 ‘105만 달러’였다. 소녀들의 가냘픈 손가락도 ‘100억 달러 수출’에 기여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수출의 날’이 있었다.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다.

‘수출의 날’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잊으면 안 될 날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날이었다.

그 ‘수출의 날’이 외국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며 ‘수출’을 빼고 ‘무역의 날’로 바뀌더니, 아예 날짜까지 달라지고 있었다. 매년 ‘11월 30일’이었던 무역의 날이 ‘12월 5일’로 슬그머니 변경된 것이다.

바뀐 이유는 ‘치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변경한 것이다. 각종 교과서와 사전 등도 ‘수출 1억 달러를 첫 돌파한 날’에서 ‘무역 1조 달러를 기록한 날’로 고쳤다고 했다.

2012년 12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무역입국의 뜻을 세운지 반세기만에, 황무지에서 세계 8위의 무역강국을 일군 것은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위대한 성취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지식경제부도 같은 날 오전 11시 6분을 기해 우리나라가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수출이 5128억 1800만 달러, 수입은 4871억 8200만 달러로 정확하게 1조 달러였다.

‘치적’은 좋았지만, 국민의 ‘헝그리 정신’은 과거사가 되고 있었다. 변경된 무역의 날은 ‘헝그리 정신’이 새삼스러운 판에 되레 더욱 빨리 잊도록 만들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무역의 날을 ‘원위치’시키지 않을까 했는데, 그럴 생각이 ‘별로’인 듯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