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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왜 우리 기업이 보상해야 하나?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9-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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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醫師)를 농락하여 가병(假病)으로 입원하고, 또는 일부러 화류병에 이염(罹染)하여 질병을 이유로 면하려고 기도하고, 그중에는 스스로 수족을 다쳐 불구자가 되어 기피하려고 하는 자, 심한 것에 이르러서는… 폭행·협박의 거(擧)하기에 시간이 없으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자기들의 ‘제국의회’에 이렇게 보고하고 있었다. ‘징용’이 견딜 만했다면 일부러 병에 걸려가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군수품’, 또는 ‘'소모품’이었다.

‘먹이(?)’부터가 그랬다. ‘일반적인 급식’이라는 게 쌀알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콩밥이었다. 주먹만 하게 뭉친 콩밥이었다. 또는 무와 홍당무가 섞인 밥이었다.

그러면서도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삽질을 시작해서, 어두워서 삽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 15∼16시간의 중노동이었다.

그런 음식을 먹으며 강제노동을 견딜 수는 없었다. 영양실조에 걸리고 질병으로 쓰러져야 했다. 그러면 꾀병을 앓는다며 매질을 해댔다.

사람이 아닌 군수품에 ‘이름 석 자’를 제대로 붙여줄 필요 따위는 없었다. 일제는 자기들의 지명(地名)을 적당히 따서 조선 사람들의 성(姓)으로 삼았다. 여기에 ‘일랑(一郞)’에서 ‘십랑(十郞)’까지의 이름을 멋대로 달았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福岡)’라는 곳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이름은 난데없이 ‘후쿠오카 이치로(福岡一郞), 후쿠오카 주로(福岡十郞)’가 되고 있었다. ‘한×, 두×,… 열×’ 등으로 취급한 것이다.

숙소에서는 베개 대신 긴 통나무를 ‘공동 베개’로 베고 자도록 했다. 그 베개의 용도가 희한했다. 새벽이 되면 ‘통나무 베개’를 몽둥이로 두드려서 잠을 깨운 것이다. 그러면 머리가 울리는 바람에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군수품’인만큼 보관은 중요했다. 그래서 숙소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산간이나, 해안, 절벽 등에 세워졌다. 창에는 창살이 설치되었다. 출입문을 밖에서 잠그고 방울까지 매달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숙소 밖에는 개를 풀어서 지켰다. 시가지로 가는 길목에는 감시초소를 곳곳에 만들었다.

눈에 잘 띄도록 빨간 허리띠를 매도록 했다. 하루에 3번씩 점호를 받아야 했다. 쓰러지기 전에는 아예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 숙소를 일본말로 ‘다코베야’라고 했다. ‘다코’는 문어다. ‘다코베야’는 ‘문어방’이라는 뜻이다. 문어는 먹을 것이 없으면 자기 다리를 뜯어먹으며 버티는데, 노무자들 역시 자기 몸을 갉아 먹으며 일하다가 체력이 고갈되면 쓰러지고 만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랬던 일본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의 해법을 제안했다는 보도다. 한∙일 양국 기업과 정부, 국민이 참여하는 ‘기억인권재단’을 설립해서 위자료와 위로금 지급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안에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죄를 요구하는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은 더 있는 듯했다. 문어처럼 강제노동을 시킨 것은 일본인데, 왜 우리 기업과 정부, 국민을 참여시키려는가 하는 점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