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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삶의 한가운데서 만나는 문학적 사유와 심도…윤수미무용단의 '춤의 조각보Ⅳ-문학. 춤과 만나다'

장석용(무용평론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기사입력 : 2019-11-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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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
10월 27일 오후 5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윤수미무용단(예술감독 윤수미, 드라마트루그 이재환)의 <춤의 조각보Ⅳ-문학. 춤과 만나다> 공연이 있었다. 세 명의 안무가 이정은, 서은지, 김연화는 독무(이정은)와 군무(서은지, 김연화)로써 1편의 에세이와 2편의 장편소설 속 공통 주제인 ‘삶’을 한 시간 동안 조화롭게 연결시키고 있었다. 윤수미무용단의 춤 인상은 과도한 대중화에 대한 경계와 창작무용의 클래식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 장르와의 콜라보는 늘 호기심을 불러 오는 법이다. 인지된 대중친화적 소재인 ‘삶’에 대한 조망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기교로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녹음 속에서 들려오는 작품 소절은 시적 운율을 띈다. 세 안무가는 문학적 춤을 보고, 춤을 통해 서로의 마음까지 들여다봄으로 우리네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다. 춤 속의 문학, 문학의 무용화는 리듬예술(무용, 시, 음악)로서 같은 뿌리임을 새삼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윤수미무용단(예술감독, 동덕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은 2010년 창단된 젊은 한국 창작춤 단체로 국내외의 크고 작은 무용제에 참가하여, 뛰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기교로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준 무용단이다. 짧은 기간 안에 일취월장한 무용수들과 안무가들을 배출해 내어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단체의 기획 공연 <춤의 조각보>는 늘 전년도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묘미를 준다. 미니멀리즘과 역동성이 적절히 배합된 공연은 춤에 대한 집중적 묘미를 불렀다.

윤수미무용단의 네 번째 <춤의 조각보>는 춤과 ‘문학과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춤으로 읽어지는 문학’, ‘춤으로 읽는 문학’, ‘춤이 된 문학’이라는 카피의 슬로건을 충족시킨다. 안무가들은 각기 다른 춤 빛으로, 추천된 문학작품에 출연한다. 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은 임솔아의 소설 <최선의 삶>, 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는 키드의 에세이 <나도 몰라서 공부하는 페미니즘>, 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용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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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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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

1. 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 임솔아의 소설 <최선의 삶>을 무용화한 작품이다. 한국여인의 고전적 전형에서 출발한 춤은 느리게 쌓아두었던 근원을 제거함으로써 해결된다는 페미니즘적 입장을 보여준다. 첼로 음(音)이 주조가 된 실내악이 여인의 감정을 전달하면서 춤은 집중되고, 윤수미 무용단의 예술 창작춤의 기본을 보여준다. 주제적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삶의 고된 짐을 상징하며 춤의 무대를 이루었던 모래주머니들을 의지적으로 허물어 버리면서 해결된다.

이정은의 안무적 발상, 「경쟁사회 속 인간들은 죽음에 견주어지는 쓰린 일상적 상실을 안고 살아간다. 상실의 대상은 쉽게 잊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애도 작업을 통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하다. 애도에 걸친 작업은 복합적이고 힘들지만 주체 성숙을 위해 필수적이다.」 누구나 삶의 정의를 잘 내리기 힘들지만 안무가 이정은은 더 나은 삶에 대한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하며, 온전히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담담하게 걸어 가야함을 작품에 투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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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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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안무의 '최선의 삶'.

삶의 핍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 소설 <최선의 삶>은 병신이 되지 않는 것이 꿈이었던 주인공 강이는 더 나아지기 위해 기꺼이 더 나빠지는 삶을 선택했다. 울거나 욕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고 마음속으로 불의에 맛 서며 악의 집단에 항거하면서 쌓인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한 조망, 거친 생존의 현장에서 이를 악물고 감정을 조율해 내면서 살아가는 일상에 지친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위안의 춤이다. 춤은 사운드, 소품, 조명 등의 도움으로 격을 갖춘다.

존재의 성립, 느린 삶의 한가운데 독경소리가 개입되면서 붉은 빛이 감도는 조명은 내 안에서 축적되고, 쌓여 있다가 분출되는 독소의 덩어리들을 분출하며, 자신이 정화되는 과정을 연출한다. 그 사이에 소설의 구절들이 낭송된다. 소설은 시가 되고, 더 이상 고독의 집을 짓지 않겠다는 삶의 좌표가 설정된다. 모래알, 그 숱한 고민의 알갱이들이 일상처럼 흩어지고 홀로 고민했던 것들이 녹아내린다. 이 작품은 느림과 격정의 공간을 파고 들면서 극기를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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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

2. 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 키드의 에세이 <나도 몰라서 공부하는 페미니즘>에서 보인 여성의 역할과 여성의 삶 중 ‘엄마’라는 역할에 관해 집중 조명한다. ‘빨래’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부과되는 과제 중의 하나이다. 안무가는 소설이나 시가 아닌 수필에서 사유적 움직임의 동인(動因)을 찾아낸다. 여성학자들이 즐겨 차용하면서 고전적 주제가 되어버린 ‘페미니즘’에 관한 사회적 이슈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한 담론은 언제나 유효하다.

서른의 여성예술가가 엄마 역으로 여자의 삶을 통찰하며 미래를 예견한다. 근원적 질문은 달라져온 현실과 미래 비전을 훑어낸다. 첫 장면; 무대를 꽉 채운 빨랫감 형상의 대형 천막, 중간; 치마를 찢어 말아 올리거나 뿌려낸 것, 마지막 장면; 피아노를 치며 엄마의 결혼식에 행진곡을 치는 오버랩은 지금의 내가 엄마에게 또 엄마가 내 나이의 여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일생을 거는 사실, 엄마가 여자였고, 내 곁에 있고, 내가 그녀가 될 것이기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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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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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안무의 '빨래는 하셨습니까?'

과장법 같이 묘사된 배경막(대형 천)에는 붉은 물감이 여러 색깔로 바뀌면서 번져온다. 삶의 예찬에 대한 역설, 김연화의 독무에서 시작된 춤은 다양한 조형의 빨강・보라・풀빛 영상과 어울리면서 공간을 확장한다. 대형 천이 걷히면, 빨래터에서의 빨래 모습을 상징하는 한국여인네 네 사람의 다양한 동작(허리를 들썩이며, 바닥을 치는 등)이 진행된다. 윤수미무용단이 발아시킨 코리안 컨템포러리의 화려한 만개는 빨랫감을 이고, 쓰고, 펼친다.

어미와 빨랫감은 종교적 의미로까지 승화된다. 어미(김연화)는 무대의 앞부분에 수평으로 놓여있던 천을 감싸 안는다. 빨래터 여인네 4인과 어미는 보는 이(자식들)가 시원한 군무로 마무리를 한다. 어미는 분주한 일상을 다시 살아간다. 엄마는 살아졌다. 춤 너머 기억, 빨래하는・빨래 너는・빨래 개는 엄마의 영상, 엄마의 빨래하는 모습을 보며 여자의 인생을 담아 자작곡으로 피아노를 치는 김연화, 어미가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는 영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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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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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

3. 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 부커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용화한 작품이다. <어린 새>는 민주화 운동 당시 실존인물이 모티브가 된다. 주인공 동호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황과 이야기들. 친구와 함께 광장에 나섰다가 눈앞에서 총에 맞은 친구의 희생을 외면하고 내적 갈등을 보이는 동호의 이야기를 행동하지 못한 이들의 아픔으로 대신한다. 작품 생성 과정에서 이런 통속적 스토리는 흔하지만, 콜라보를 통한 춤은 훌륭하게 승화된다.

반원에 선 일곱 사람들, 죄책감과 양심에 서서히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 동호(서은지)는 스테이지의 안쪽에서 무소처럼 서 있다. 거친 조명과 피아노, 지속적 현의 변주가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중독성을 견지한다. 배경에 뜨는 새털 영상, 푸드덕 거리는 날개 소리, 다 사라지고 소년만 남게 된다. 참혹한 현장에서 인간 존엄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공간은 없었다. 영상으로 다가오는 추억덩어리들은 흐느낌을 형성한다. 독무에 이은 사인무가 슬픔을 가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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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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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지 안무의 '어린 새'.

안무가는 많은 상징 중에 ‘어린 새’를 자신의 안무작의 상징으로 사용함으로써 시대 상황에서 희생된 소년의 넋을 달랜다. 나이든 자들의 엄정한 도덕적 책무는 무조건 보호되어져야 할 어린 새/소년을 지키는 것이다. 빛을 거꾸로 돌리는 시절에도 비겁은 사라지지 않을 포말과 같은 것이다. 새들도 세상을 뜬다. 눈물과 탄식을 대신하는 무수한 디딤과 사위들이 인다. 생사를 달리했던 친구는 제의적 슬픔을 제치고 금빛 희망을 안고 오는 소년을 영접한다.

소년은 대각선의 경사면을 탄다. 첼로 선율은 증기를 빼는 듯한 거친 호흡소리를 견인한다.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소년의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밝은 조명이 심도 있는 움직임을 요구한다. ‘넘어진 너를 뒤로하고 달린 나’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지 못했다. <어린 새>는 경전 앞에 두고 양심으로 춘 춤의 참회록이며, 쓰러져 등을 대고 하늘을 보던 작은 새들의 모습이었다. 춤 머신이 된 서은지는 <어린 새>를 통해 역사적 사유의 공간으로 본격 진입했다.

윤수미무용단의 <춤의 조각보Ⅳ-문학. 춤과 만나다>는 성숙으로 가는 건강한 모습, 일상의 소중함, 씻기지 않는 양심에 대한 현실적, 교훈적 명제들을 잘 소화해 내었다. 무용단의 대표 안무가 3인 모두는 윤수미 춤의 문화적 유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 동시대의 문화적 전통이 이어지는 작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준비 과정이 길었지만 하루 공연으로 끝나는 작업은 만다라 의식을 연상시킨다. 앞으로 제한과 한계가 없는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공연은 주제, 독창성, 구성, 기교면에서 부족함이 없었으며, 인접 장르와의 유기적인 작업이 돋보였다.

사진제공/박귀섭


장석용(무용평론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무용평론가,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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