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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증권시장 멋대로 주무르는 외국인투자자 '횡포'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기사입력 : 2019-08-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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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공매도 세력의 놀이터로 변한 주식시장.”

며칠 전, 경실련은 주식시장의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시킬 것을 금융당국에 촉구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경실련은 그러면서 “공매도 제도는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외국인투자자들은 불법 무차입 공매도까지 거침없이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 공매도 제도를 ‘실효성 있게 재설계’할 것을 주장했다.

그럴 만했다. ‘검은 월요일’이라고 불린 지난 5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은 4126억 원어치의 주식을 공매도로 팔아치워, 이날 전체 공매도 거래대금의 68.4%를 차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실제로 주가가 내려가면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이른바 ‘하락 장세’에서는 투기 수요까지 가세한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추락하는 주가를 외국인투자자들이 더욱 큰 폭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군림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들이면 주가지수인 ‘코스피’ 자체가 오르고, 팔아치우면 ‘코스피’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1992년 증권시장 개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직접투자를 앞두고, 우리 증권 관계자들은 그들의 투자성향을 연구했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어떤 주식을 사들일 것인지 전망한 것이다.

결론은 간단했다. ‘대형 우량주’의 ‘장기투자’였다. 자동차업종은 현대자동차 주식, 전자업종은 삼성전자 주식 등 자본금 규모가 큰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우리 증시를 잘 모르는 그들이 ‘안전한 투자’를 선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대표기업 주식’ 따위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들이 사들인 주식은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주식이었다. 소위 저평가 되어 있던 주식이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증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저(低) PER’ 종목의 가격이 치솟았다. 우리 투자자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사는 것을 보고 덩달아 사들이기 시작했다. ‘뇌동매매’였다. 수요가 늘어나니 가격은 더욱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남영나이론∙대한화섬∙백양 보통주와 우선주 등 몇몇 종목은 주당 10만 원을 넘고 있었다. 가격이 ‘5자릿수’에서 ‘6자릿수’로 치솟은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 주식을 ‘귀족주’라고 불렀다.

귀족주는 이전에도 있었다. 1970년대 해외건설 붐에 힘입어 건설회사 주식값이 액면가 500원의 20배인 1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 건설주를 귀족주라고 했는데, 그 이름을 다시 붙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선두주자’는 태광산업 주식이었다. 태광산업 주가는 1992년 2월 27일 증시 사상 처음으로 10만 원을 돌파했다. 직접투자 허용 불과 두 달 만이었다. 또 두 달 후인 5월 18일에는 20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태광산업 주식에는 뭔가 특별한 이름이 필요했다. 그 이름이 ‘황제주’였다. 황제주는 이렇게 외국인투자자 덕분에 떠오르고 있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장기투자’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빗나갔다. 그들은 ‘소규모자금’으로 유통주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해서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랬다가 팔아치우고 다른 주식에 손을 대는 ‘단타매매’로 일관했다. 그게 ‘선진투자기법’이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초기에 들여온 자금은 3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당시 증시의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70조 원에 달했다. 황제주 태광산업의 자본금도 상장기업의 평균자본금 381억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55억 원에 불과했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밑천’으로 짭짤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몇 해 전, 증시 개방 20년 동안 외국인투자자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분석한 자료가 있었다. 이들은 20년 동안 우리 증시에서 52조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해서 이를 410조 원으로 불렸다고 했다. 수익률로 따지면 무려 786%였다. 같은 기간 동안의 코스피 상승률 228%의 3.4배나 되었다.

그동안 외국인투자자들은 배당금으로만 53조 원을 챙기고 있었다. 그랬으니, 외국인투자자들은 순매수한 원금 52조 원을 모두 회수한 채, 우리 증시에서 번 돈만 가지고 느긋하게 투자를 하는 셈이었다.

반면, 속칭 ‘마바라’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사들인 주식을 뒤늦게 따라서 매입했다가 ‘상투’나 잡고 있다. 주식투자자들만 상투를 잡는 게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번에 쏟아낸 공매도 물량을 우리 기관투자가가 떠안아야 했다. 그 기관투자가 중에는 ‘국민연금’도 있다. 국민연금이 상투를 잡았다면, 외국인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해’를 끼친 셈이다.

외국자본은 기업의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 해 전, KT&G의 사례가 있었다. 53.18%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외국계 주주 가운데 상당수가 사장 연임을 찬성한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기업의 경영을 참견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 자사주 전량 소각, 순이익의 40~50% 배당, 외국인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등을 공공연하게 요구한 것이다. 현대차를 ‘봉’으로 삼아 한몫 단단히 챙길 작정이었다.

엘리엇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6억 7000만 달러, 7200억 원의 손해배상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우리 정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또 다른 부작용도 낳고 있다. 주가지수, ‘코스피’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지수는 앞으로의 경기를 점칠 수 있는 ‘경기예고지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책당국도 주가지수의 변동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주가지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들이면 오르고, 되팔면 떨어지는 현실이다.

이런데도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 좀 사들이는 것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증시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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