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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이항복의 ‘폭소 정치’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기사입력 : 2019-05-2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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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고려 말 학자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왜란 때 병조판서로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국난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이항복은 그 공로로 오성부원군에 올랐다. 그래서 ‘오성대감’이다.

‘왜란’ 때 어느 무더운 여름날, ‘어전회의’를 앞두고 있었다. 이항복은 어전회의 참석 준비를 하는 도원수인 권율(權慄) 장군에게 넌지시 권했다. 권율은 이항복의 장인이었다.

“오늘 어전회의는 갑옷을 입고 출석해야 할 텐데, 너무 더우니 속옷만 입고 갑옷을 두르시지요.”

권율은 사위가 권하는 대로 속옷에 갑옷만 걸치고 나갔다. 그런데, 회의 도중 이항복이 느닷없이 임금에게 건의했다.

“오늘은 너무 더우니, 관모와 관복 상의를 벗고 회의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선조 임금이 동의했다.

갑옷을 벗은 권율은 속옷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어전회의는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항복이 이때를 노려서 한마디 했다.

“전란 중에도 모두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도원수께서는 관복과 갑옷 외에는 마땅히 입을 옷이 없습니다.”

국란 중에도 사치를 일삼는 일부 권신들을 꼬집은 말이었다.

광해군 임금 때였다. 금부도사가 이춘복이라는 죄인을 체포하러 갔다가 잡지 못하고 대신 이원복이라는 이름 비슷한 사람을 끌고 와서 국문하려고 했다.

자칫,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었다. 이를 보고 이항복이 슬그머니 한마디를 했다.

“내 이름 이항복도 이춘복과 비슷하지 않은가. 우선 나부터 변명을 해야 죄를 면할 수 있겠구나.”

이항복의 한마디에 재판에 참가하려고 모여 있던 대신들이 한바탕 폭소를 했다.

이원복은 그 자리에서 풀려나갔다. 이항복은 우스갯소리 한마디로 무고한 백성을 구해준 것이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옥사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이항복의 정치에는 이렇게 웃음이 있었다. 이항복은 비판하고 꼬집어야 할 일도 웃음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설전(舌戰)’으로 날을 보내는 오늘날의 정치판이 좀 배웠으면 싶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대권을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그 주특기를 살려서 정치를 웃음으로 풀어나간다면, 그 나라 정치판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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