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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화웨이(華爲) TV 진출 종합 전자 메이커 변신 선언 … 삼성전자 LG전자에 도전장

김대호 연구소 소장 / 경제학 박사

기사입력 : 2019-05-02 14:29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 이미지 확대보기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
중국 대륙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회웨이가 TV에 진출한다.

2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 따르면 화웨이(華爲)가 연내에 TV시장에 진출하기로 하고 준비작업 마무리단계에 들어갔다.
차세대 고속통신규격인 '5G' 통신기기를 탑재한 고부가치 TV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TV 시장 신규진출을 계기로 다양한 가전제품 구색을 갖춘 종합 메이커로의 변신을 추진한다.

화웨이 TV에는 5G에 필요한 대용량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루터 등을 탑재한다.

또 고정밀 '8K' 방송에도 대처할 수 있게 한다.
5G 고속통신도 가능해 화웨이TV로 양질의 동영상 감상이 가능하다.

가상현실(VR) 영상 등에도 활용할 수 있어 TV의 용도가 넓어진다.

화웨이는 휴대통신 인프라 시장에서도 스웨덴 에릭슨사와 시장 점유율 수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는 1944년 중국 구이저우성 안쉰에서 태어났다.

런정페이 아버지는 중학교 교장이고 어머니 역시 학교 교사였다.

7남매 중 장남이었던 런정페이는 늘 경제적으로 부족했다. 고등학생 런정페이의 소원은 하얀 밀가루로 만든 만두를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런정페이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난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칭토목공학대학 건축과에 입학한 런정페이에게 불행이 닥쳤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66년의 일이다.

런정페이의 아버지가 국공내전 시절 국민당 정부의 군수공장 경리로 일했다는 전력이 밝혀지면서 런정페이는 순식간에 ‘반동분자의 아들’이 되었다.

이때부터 박해와 비판이 쏟아졌다. 집안은 순식간에 풍비박산 났다.

런정페이는 동물 축사에서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문화대혁명의 바람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런정페이는 정보, 통신, 컴퓨터 관련 지식을 독학으로 익혀나갔다.

런정페이는 대학 졸업 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통신병과에서 근무했다. 군대 시절에도 런정페이는 능력을 발휘해 전국 군 과학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수상의 영광은 런정페이를 멀리했다.

연좌제로 인해 런정페이는 승진, 포상 등에서 늘 제외되었다. 공산당 입당도 번번이 좌절되었다.

1984년 런정페이는 군에서 제대하고 전자회사에 입사해 IT분야를 접했다.

부사장까지 승진했지만 사기 사건에 연루돼 회사를 불명예스럽게 퇴사했다.

런정페이는 독자적인 사업에 나섰다.

1987년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광동성 선전. 그는 중국 우전부 소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원 5명과 약 360만 원의 자본으로 화웨이를 설립했다.

그때 런정페이의 나이 43세였다.

훗날 런정페이는 “창업 때 나는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이였다. 불혹(不惑)은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나는 컴퓨터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느꼈고 그 세상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회사 이름 화웨이는 ‘중화민족에 미래가 있다’는 뜻의 ‘중화유위(中華有爲)’를 줄인 말이다.

중국을 위해 행동에 나선다는 뜻으로로 해석할 수 있다.

화웨이의 비전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표어는 ‘네트워크 세상의 파트너’이다.

사업 초기 런정페이는 보따리 장사였다. 홍콩에서 제품을 들여와 중국에 되파는 형태였다. 화재경보기, 통신장비는 물론 다이어트 약도 판매했다.

그러던 중 공공기관에서 전화교환기 교체를 준비한다는 정보를 얻고 홍콩에서 대량으로 수입 판매해 큰 이익을 남겼다.

그 돈으로 통신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런정페이는 ‘디지털 프로그램 제어 교환기’ 개발에 올인했다.

이때부터 화웨이의 독창적인 기업 문화가 생겼다. 바로 ‘텐트문화’이다.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목표 달성에 매달리는 문화이다.

1993년 화웨이는 중국인민해방군에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화웨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성장의 뒷받침은 연구개발 투자였다.

런정페이는 자신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직원들의 진취성과 도전 의식을 고취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인재 발굴을 위해 최고의 대우, 최선의 서비스를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직원은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이에 보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 런정페이는 다른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CEO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런정페이는 지금도 화웨이를 이끌고 있다.

한 손에는 당근을, 또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들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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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연구소 소장 /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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