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오후 5시, 창무 포스트극장에서 ‘내일을 여는 춤’에 초대된 조성민 안무의 <너를 위한 D단조>는 사자(死者)를 위한 진혼무, 몸으로 부르는 레퀴엠이었다. 막내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춤은 슬픔을 참아내며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초월적 의지를 보인다. 소극장에서 올리는 조성민 식(式) 천도의식은 잃어버린 ‘너’와 살아가야하는 ‘나’(혹은 ‘누군가’)의 애절한 심정을 담아 담백하게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고 위안을 주는 예술로 승화된 한국무용이었다.
죽음은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지만 슬픔을 깔고 있다. 쉽게 접하는 죽음이 자신과 연관될 때 작품화 과정은 쉽지 않다. 슬픔의 강도를 제어하지 못했을 때 장르는 변화하고, 너무 진중하면 설득이나 강요가 되기 때문이다. 안무자는 ‘무제’의 느낌으로 무용수 각자의 감정을 도출하도록 유도한다. ‘나’의 움직임을 보거나 연기자들이 겪은 죽음에 대한 인상을 상징적 움직임으로 표현케 한다. 춤꾼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라도 춤추는 것이 운명이다.
무음의 공간, 낯선 길을 향해 ‘나’(조성민)는 손을 뻗어본다. 마지막 장면과 동일한 이 길은 나의 ‘너’나 ‘누군가’가 이별을 고하는 곳이다. 핀 조명이 퍼져 전체조명으로 바뀐다. 다층적 감정을 연기해내는 춤꾼들이 첫 발을 내딛고 구겨진 형태의 힘든 동작으로 이동한다. ‘나’외의 두 사람은 ‘나’와 같은 죽음을 경험한 일반인이자 ‘나’를 강하게 대변해주는 내 마음이다. 음정・박자를 외면한 악기 자체의 소리들만이 무용수의 떨림과 오열에 맞춰 연주된다.
무용수 세 명은 각자의 핀(공간과 마음) 안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두려움에 걸친 몸 떨림 등의 감정들과 상황을 확장과 축소만으로 표현해낸다. 죽음을 놓고 인정과 거부의 몸부림의 반복이 지속적으로 아픔과 슬픔을 표현해낸다. 무용수 둘은 서로의 에너지 접촉으로 밀고 당기면서 인정과 거부를 연기해낸다. 아쟁의 밀고 당기는 활이 무용수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춘다. 둘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관절이 차례로 꺾이며 땅 속에 묻힌 현실을 인정한다.
진도 씻김굿 ‘영돗말이’를 바탕으로 발로 땅을 어루만진다. ‘너’ 또는 ‘누군가’가 묻힌 땅을 다진다. 관을 묻고 무덤을 만들기 전에 땅을 발로 다지며 노래하는 장면을 차용한다. 평안을 기원하며 ‘나’의 발은 정성껏 땅을 다진다. 아직 ‘나’의 손은 떨린다. 한지를 땋은 뱀 똬리 유골함을 받아 든 ‘나’는 아직 떨린다. 깊은 슬픔을 참아내면서 무대에 힘없이 앉아 함의 흰 가루를 뿌린다. 이때 뒤에서 중세풍의 드레스 여인(‘너’ 또는 ‘누군가’)이 등장, 함께한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같은 곳을 올려다본다. 영혼은 떠나려 하고, ‘나’는 현실로 시선을 돌린다.
춤 연기에 있어 죽음에 대한 해석 방법과 움직임의 내용을 달리하며. 춤 개념의 확장을 꽤한 작품은 예작(藝作)이 되었다. 공연에서 두드러지게 호흡을 맞춘 분야는 라이브 음악이다. 김현수(음악감독. 장구와 에너지 차임, 소리), 김경민(동해안별신굿 장구, 꽹과리, 소리), 임시대(피리), 김예찬(징, 오션드림, 소리), 신해랑(소리), 김태환(대금), 이민규(아쟁)로 구성된 국악팀은 장단의 개수가 아닌 무용수의 감정에 집중한 음악으로 이번 공연에 깊이감을 실어주었다.
안무가는 익숙한 풍경의 낯 설은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너를 위한 D단조>의 마지막 신, 뒤돌아 떠나고 있던 영혼은 ‘나’를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이때 ‘나’는 흰 가루를 다 날리지 못하고 왼쪽 가슴에 묻는다. 적절한 음악사용도 안무가의 몫이다. 씻김굿의 천궁소리아니리의 「잘가시오~~~~」의 소리가 애절하게 라이브로 퍼짐과 동시에 ‘우리’는 그곳과 이곳의 안녕을 빌며 작별을 고하면서 공연은 종료된다.
(출연/박지현(고양예고 졸업. 성균관대 졸업・동대학원 재학. 울산예고 강사), 한지혜(선화예고 졸업, 성균관대 졸업・동대학원 재학), 이유정(성군관대 재학), 조성민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