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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지 않는 ‘황금돼지의 해’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기사입력 : 2018-1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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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옛날 평안도 철산의 동고암이라는 곳에 ‘황금돼지’가 살고 있었다. 온갖 조화를 일으키는 신통력 있는 돼지였다.

황금돼지는 신통력을 믿고 마을까지 들어와서 행패를 일삼았다. 가장 심한 행패는 마을의 여성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황금돼지는 산골짜기에 있는 굴로 여성을 유인해서 겁탈했다.

나라에서는 못된 황금돼지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새 사또를 파견, 잡으라고 명령했다.

새 사또는 명주실 한 묶음을 준비했다. 그리고 자기 아내의 치맛자락에 실 한끝을 매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 3경쯤 되자 아내가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슬그머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치맛자락에 맨 명주실도 함께 풀려나갔다.

이튿날 사또는 명주실을 따라갔다. 산골짜기까지 갔더니 돼지 굴이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포함, 모두 5명이 잡혀 있었다. 돼지는 먹이라도 찾으러 갔는지 ‘부재중’이었다.

사또는 붙들려 있는 여성들에게 황금돼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굴 한쪽 구석에 숨었다. 돼지가 돌아오자 한 여성이 용기를 내서 물었다. 돼지는 ‘사슴가죽’이 제일 무섭다고 대답했다. 사또는 숨어서 이 말을 모두 들었다.

마침 사또의 말안장 주머니가 사슴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사또는 이를 돼지에게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돼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사또는 돼지의 멱을 따고, 여성들을 모두 구출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사또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었다. 황금돼지에게 겁탈 당한 것이다. 몇 달 후 아내는 옥동자를 분만했다. 이 옥동자가 신라시대의 문장가 최치원이었다.

최치원의 ‘출생신화’에서 보듯, 돼지는 다산(多産)의 상징이다. 생후 8개월이면 번식을 할 수 있는데, 그 때부터 10년 동안이나 번식할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한 배에 보통 12마리 정도를 낳는다.

또한 아무것이나 먹여도 잘 크고 잘 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식에게 ‘돼지’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대했다. 자기 자식을 남에게 소개할 때 ‘돈아(豚兒)’라고 낮추기도 했다.

돼지해는 이렇게 좋은 해다. 그 중에서도 ‘황금돼지의 해’는 더욱 좋은 해다. 그래서인지, 기해년(己亥年)인 내년을 6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의 해’라며 반기고 있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등 ‘장삿속’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헷갈리는 게 있다. 우리는 12년 전 이맘때에도 ‘황금돼지의 해’가 600년 만에 돌아온다며 들떠 있었다. 내년이 또 ‘황금돼지의 해’라면 우리는 그 좋다는 해를 겹치기로 맞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돼지저금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돼지저금통은 동전이 가득 찬 뒤에 깨뜨려야 돈을 꺼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저금통의 운명은 ‘끝’이다. 존재가치를 잃는 것이다.

따라서 저금통으로서는 비어 있어야 안전할 수 있다. 돈이 차면 깨어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만(撲滿)’이라고 했다. 가득 차면 부서진다는 얘기다.

‘황금돼지’에 대한 희망도 좋지만, ‘박만’에 대한 경계심도 무시하지 않는 게 좋다. 적당하게 많아야지, 너무 많으면 안 되는 법이라고 했다. 복을 받되, 넘치지는 않는 ‘황금돼지의 해’였으면 싶은 것이다.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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