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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업, 정신적으로 단련시키고 기량 숙성시켜온 겸허의 道場

[한류스타(50)] 동서양의 신비 품은 시대의 그림 이야기꾼 최성숙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기사입력 : 2018-12-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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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작 정월대보름-축제, 50x60.5,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4
최성숙(崔星淑, Choi Sung Sook)은 경기도 부평 출생(1946)이다. 유년시절부터 그림은 물론 발레 등 예능에 유별난 재능을 발휘한 그녀는 명문 경기여고 졸업(1964), 서울대 회화과 졸업(1968), 서울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1972)하고 중등학교 미술교사가 된다. 훤칠한 키에 출중한 미모로 동북중학교 아이들에게서 원더우먼이란 별명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던 그녀는 유학을 결정하고 서독 괴팅겐 대학 수학(1978),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쇼미엘에서 수학(1979~80)하였다.

한국화가 무염지(無染池) 최성숙의 본격적 화업은 ‘5.16 민족예술신인상’전 동양화부분 수석상 수상(1968)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목할 신인작가로서 ‘윤여환・최성숙’전(서울신문회관, 1975), 제1회 개인전(‘겨울여행’전, 서울신문회관, 1978), 제2회 무염지 동양화전(‘푸른계절’전, 불교회관, 1978), 제3회 최성숙 동양화전(‘독일의 인상’전, 서울 선화랑, 1979)에서 지금까지의 50년 그림 작업은 자신을 정신적으로 단련시키고 기량을 숙성시켜온 겸허의 도량(道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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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작 브라운슈바이크의 크리스마스장날, 39.5x51.5, 화선지에 먹, 1978

파리에서 세계적 조각가로 도약하던 문신을 만나(1978), 이듬해 봄 반포의 아파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최성숙은 문신과 함께 영구 귀국(1980), 추산동에 정착(1981)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에게 헌신하였으며, 경남중진작가 초대전, 미협전 초대출품(1983), 제4회 최성숙 작품전(마산동서화랑, 1984), 제5회 최성숙 작품전(마산 동서화랑, 1984)으로 지역 문화발전과 국제적 감각으로 한국화에 대한 인적전환을 추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울러 한국현대수묵화대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81), 제5회 최성숙 작품전(서울 신세계 미술관,1985), 서울신문사 정예작가 초대전(1984~85), 한국화 100년 전 85인 초대전 출품(호암 갤러리, 1986), 86아시안 게임기념 초대전 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86), 제6회 최성숙 작품전(서울 신세계 미술관, 1987), 현대작가 초대전 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87~91), 제7회 최성숙 초대전(서울 한국화랑, 1989)으로써 80년대 한국화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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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작 제주도-여름향기, 52x76, 화선지에 먹, 채색, 2003

최성숙은 개인전을 남발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14회의 개인전을 치렀다. 위대한 조각가인 남편 문신과 마산에 정착하여 미술관 건립과 작품 활동을 지속해 왔다. 움직이는 미술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93), 아름다운 서울전 초대출품(서울 시립미술관, 1993), 제8회 최성숙 초대전(창원KBS, 1994)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던 중 남편 문신의 소천(1995.05.24.)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문신이 잠든 그곳에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이어졌다.

그녀는 서울시 문화상품 특별초대전(서울 테크노마트, 1998)에 이어 숙명여대 회화과 객원교수(1999~)로서 마음을 다잡고 20세기를 마무리한다. 21세기 들어 국정홍보처 해외 홍보관 문화상품 특별초대전(북경 한국문화원, 2001~02), 제9회 최성숙 초대전(공간화랑, 부산, 2003), 제10회 최성숙 초대전(금호문화재단, 서울, 2003~04)으로 소통을 개시한 그녀는 문신과 자신의 작품들을 국제 브랜드로 만들 사업들을 구상하고, 해외를 오가면서 견문을 넓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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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작 은행, 78x74, 화선지에 먹, 1978

바다가 내려다보이던 추산동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풍광의 미술관은 몰지각한 행정으로 아파트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부부의 작품들은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2003년,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문신의 엄청난 조각품과 회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이 소장된 마산 소재 문신미술관을 창원시에 기증하였다. 한국 미술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통 큰 여류화가의 행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2004~)이 되었다.

최성숙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관장(2004~)으로서 자신보다는 문신과 문신예술을 알리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러면서도 제11회 최성숙 초대전(‘새벽별 하나에 비친 세계’전, 서울 경기여고 박물관, 2005), 인천국제여성비엔날레 초대 출품(2007), ‘화가의 아내전’ 초대 출품(서울 인사아트센터, 2007)하였고, 제12회 최성숙 초대전(‘신의요정-카프리치오’전, 공화랑, 2008~9) 전시 이후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십여 년 간 최성숙은 KIAF초대(서울 COEX, 2010), 문신원형미술관 개관기념 제13회 최성숙초대전(‘문신의 마음-추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2010), 제14회 최성숙초대전(‘사랑과 추억’전, 창원MBC, 창원 신세계백화점 초대전, 2011), 아트페어( ‘문신과 최성숙’, 창원 신세계백화점, 2012), ‘가을 L’AUTOMNE’ 초대출품(숙명여대 문신미술관, 2013), 한국・유럽 현대미술동향전 초대 출품(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2014), ‘아직도 우리는 현역이다’ 두 번째 초대출품(정문규 미술관, 경기, 2015), 홍콩 아트페어 초대(갤러리 ‘작’, 홍콩, 2015), 서울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초대전, 2015)으로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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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작 겨울몽마르트르, 70x50, 황화선지에 먹, 채색, 1987

최성숙은 2017년 독일 함부르크 마르치아트 인터내셔널 갤러리 전시에 이어 2018년 최성숙은 룩셈부르크 슐라스고 아트갤러리에서 거리를 좁히다(‘DISTANCES RAPPROCHEES’)전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유럽에서의 국제적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전통 한국화의 기법으로 독창적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최성숙의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 예술과 일상>전이 10월 26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녀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제38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시상식에서 결과 격이 다른 독창적 예술창작과 미술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공헌예술가상을 수상했다. 해외 전시회에서는 동양의 붓 터치에 자신만의 현대적 감각을 담은 독창적 작품을 선보여 왔다. 액자의 틀까지 화면으로 삼은 십이지신상 같은 작품들은 단순한 배경에 강렬한 색채로 풍경과 동물에서 얻어지는 영감과 유머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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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한국화가

한국전쟁을 체험한 소녀가 화가가 길을 걸으며 전쟁을 극복해내고, 파리 시떼 데자르 체류작가로 선정되고, 박물관・미술관 발전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고희(古稀)를 지난 나이도 잊은 채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녀는 대학미술관 1호인 숙명여대 미술관의 역할과 영구보존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제 이 예술가의 꿈인 우리 미술작품으로 해외에서 인정받는 아트 상품을 만들어 우리 예술가들을 돕고자하는 선한 마음을 서로가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으면 한다. 한류 스타 무염지 최성숙 선생의 무궁영화를 기원한다.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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