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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태양도 두렵지 않은 노란 동심-벌노랑이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기사입력 : 2018-12-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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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도서관 아이들과 강화로 문학기행을 가던 날 첫눈이 내렸다. 대부분의 첫눈은 쌓이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날리다가 사라지기 십상인데 올 겨울 첫눈은 발목이 빠질 만큼 소복이 쌓여 순식간에 세상을 동화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은 차창 밖으로 내리는 흰 눈을 보며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녔다. 그 눈밭 한 모퉁이에서 한 떨기 산국을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산국의 노란색이 마치 아직 꽃의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 같았다.

노란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생명의 색이다. 봄날에 피어나는 노랑개나리의 생명력과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의 노랑 솜털 같은 따스함이 스며있다. 노란색 속엔 노랑 가방을 메고 노랑 빵모자를 쓴 유치원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들어 있다. 흰 눈을 이고 선 샛노란 산국을 보는 순간 나는 지난 여름 중랑천에서 만났던 벌노랑이떼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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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노랑이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리다 눈을 스치는 노란색에 이끌려 자전거를 멈췄을 때 비탈진 둑을 따라 가득 피어 있던 벌노랑이떼의 노랑 꽃무지, 쨍한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기발랄한 아이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탄성과 함께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폭염에 지쳐 주변의 다른 식물들이 타들어가도 벌노랑이는 한껏 어여쁘고 앙증맞은 꽃을 피우며 세상을 환하게 밝혀준다.

이름 때문일 테지만 벌노랑이를 보면 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름 앞에 붙은 벌은 꿀을 모으는 벌이 아니라 벌판, 들을 가리키는 접두어다. 벌노랑이는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벌판에 피는 노란 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콩과에 속하는 식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벌노랑이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땅을 기름지게 한다.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돋아나 비스듬히 기울면서 30㎝ 정도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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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노랑이

잎은 어긋나고 꽃은 한 여름에 잎겨드랑이에서 돋아나온 기다란 꽃줄기 끝에 1~4개의 노란 또는 주황색 꽃송이가 모여서 핀다. 향기가 좋고 꿀이 많아 곤충들이 좋아하는 밀원식물이다. 꽃이 지는 9월쯤이면 작은 꼬투리 속에 열매를 맺는다. 비슷한 열매를 맺는 까닭에 '노란 들콩'으로도 불린다.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많아 가축들의 사료나 퇴비로 많이 이용되던 벌노랑이는 민간에선 금화채나 백맥근으로 불리며 해열제와 지혈제로 이용하며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기도 했다. 여러해살이풀이라 한 번 심으면 해마다 예쁜 꽃을 불 수 있다.

꽃 모양을 자세히 보면 다섯 개의 꽃잎이 세 가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생김새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위를 향해 곧게 펼친 꽃잎은 곤충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깃대 역할을 하여 기꽃잎이라 부른다. 가장 크고 여러 개의 자색 줄무늬가 는 기꽃잎은 곤충들의 안내표지판인 셈이다. 중앙의 꽃잎은 좌우로 대칭을 이룬 2개의 꽃잎이 눈에 가장 잘 띄도록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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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노랑이

가운데 두 장의 꽃잎은 좌우로 펼쳐져서 곤충들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꽃부리 아래쪽에 있는 2개의 꽃잎은 뱃머리 모양을 닮아 용골꽃잎으로 부르는데 수술과 암술을 감싸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용골 꽃잎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벌들은 꿀을 구할 수가 있다. 벌들이 꿀을 찾아 꽃잎 속으로 파고드는 과정에서 꽃은 벌에 몸에 묻은 꽃가루를 이용하여 수분을 하고 열매를 맺게 된다. 벌노랑이의 앙증맞은 꽃 모양은 그저 예쁨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꽃가루받이를 위한 끊임없는 진화의 결과물인 셈이다.

첫눈이 내리는 날, 흰 눈처럼 때 묻지 않은 동심을 지닌 아이들과 강화의 여러 곳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반도 제일의 생기처(生氣處)인 마니산을 품고 있는 강화를 기행하며 나는 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한 여름의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마냥 환하게 피어나는 벌노랑이처럼 자신의 꿈을 펼쳐가길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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