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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대국자와 훈수꾼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기사입력 : 2018-10-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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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은 완연한 가을이다. 공원 중앙에는 700m 트랙이 잘 깔려 있고 그 오른편으론 정오의 분수쇼가 펼쳐지는 호수가 있다. 대국장이 마련된 곳은 그 옆이다. 비닐하우스 형상의 대국장 안에는 돌로 만든 탁상과 나무로 만든 의자가 8줄가량 다닥다닥 붙어있다. 노인들이 나와 바둑과 장기를 두는 곳이다. 노인들은 둘로 나뉜다. 자리에 앉아 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신 분은 대국자고 담배를 물고 서 계신 분은 훈수를 두시는 분이다. 매일 명국을 쏟아내신다는 고수이자 호적수 두 분이 나타나면 좁은 공간 안으로 관중들이 들어찬다. 서있는 훈수꾼들이 “패를 걸어야지”, “귀포를 잡아요” 하며 전의를 부추기는데 정작 턱을 고인 당사자는 묵묵부답이다. 입장이 다른 것이다. 훈수를 두는 자는 관전자의 넉넉한 마음으로 전체 판세를 읽을 수 있다. 세상사 강 건너 불구경하는 구경꾼의 마음이라면 오죽 넉넉할까. 그러나 훈수꾼도 직접 싸우는 입장이 되면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대국장의 주인공은 딱 두 사람이다. 진땀을 흘리며 싸우는 것도 그들이고 승자가 맛보는 달콤한 환희도 그들이 누린다. 당황한 나머지 덜컥수가 나와 패배의 쓴맛을 보는 것도, 패배에서 일취월장의 기량이 오르는 것도 당사자다. 훈수꾼과 대국자의 경계는 명확하다. 피곤하겠지만 당신도 문제의 해결사로, 승패의 주관자로 살아가야 한다.

나 또한 광고주를 위해 광고를 만드는 일로 평생을 일했다. 그들이 그린 좁은 운동장이 내 인생의 그라운드였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 경제를 일으키는 힘은 역시 생각의 힘이라고 판단했다. 직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원을 선택했고 창의력에 대한 책을 폈다. 산업 현장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두 눈으로 확인한 아이디어의 흥망성쇠를 대학과 지방을 돌며 강의했다. 추론과 연상의 과정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담아내는 이 칼럼도 그래서 전하는 것이다. 어떤 계기였을까? 광고대행사에서 선배가 되어 일하던 시절, 후배들에게 훈수만 두지 말고 문제의 해결사로 직접 나서서 칼을 갈며 살라는 훈수를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역시 임원이 되어서도 밤늦도록 볼펜을 입에 물고 사무실을 배회하며 전략기획서를 직접 작성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가장 큰 광고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하긴 그의 훈수로 내 인생의 분수령을 맞았으니 훈수도 아주 무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세상을 맞아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백수골방, 밴쯔, 포니신드롬, 떵개떵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이른바 유튜브의 파워 인플루언서들이다. 지금의 젊은이들, 이른바 Z세대들은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며 먹고 놀고 공부한다. 웹 환경이 모바일 환경으로 바뀌면서 심지어 검색도 여기서 한다. 유튜브의 속의 스타들은 이 속에서 자신들의 세상을 발견했다. 방송국을 차려서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먹고 화장을 해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을 모은다. 얼짱이나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만 유튜브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남편 없이 자식 셋을 키우며 살던 할머니가 손녀딸과 시작한 유튜브로 가장 핫한 랜선 할머니가 되어 삼성전자, 일본 관광청의 러브콜을 받아 전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던 한 공시생이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공유하면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 준비생이 되었다. 박막례 할머니와 붓노잼은 각각 56만 명과 4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콘텐츠의 생산자이고 세상의 주인공이다. 지금 당신 손의 유튜브만 누르면 확인할 수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일자리도 줄어든다고 한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유시민 선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며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는 삶이다.” 라고 말했다. 불안과 상처를 감내하고 자기 주도적인 삶에 동참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각박한 현실만 탓하지 말고 자신이 발견치 못한 또 다른 면모를 잘 살펴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그라운드를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라고 처음부터 랜선 할머니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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