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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북소리와 북소리와 북소리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기사입력 : 2018-10-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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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또 한 번의 가을이 왔다. 젊은이의 명소로 새롭게 뜬 익선동 밤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맑고 찬 가을 공기가 따뜻한 인연을 잇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강아지 키우는 재미로 살아가는 친구와 함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병어조림을 놓고 길거리 좌판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우리는 여름날의 불볕더위를 기억했고 다가올 시린 겨울을 예감했다. 선홍빛의 단풍으로 물든 사찰 유람을 서둘러야 할 계절이다. 수년 전 가을, 나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자의 예고 없는 급습으로 실직의 실의에 빠져있었다. 나는 남쪽으로 내려가 선운사를 찾았고 그곳에서 법고의 풍경을 마주했다. 먹먹한 심정을 가슴에 누르며 다만 바라보았는데 우람한 몸집의 스님이 양팔로 허공을 휘저으며 두드리는 새벽의 북소리는 단지 북소리가 아니었다.

사찰에서 부처의 울림을 전하는 소리는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 해서 운판, 목어, 범종, 법고 네 가지다. 운판은 하늘, 목어는 물속, 법고는 땅 위, 범종은 지옥의 중생들에게까지 제도를 전한다. 법고는 아침과 저녁 예불과 법식을 거행할 때 연주하는 북이다. 잘 건조된 나무로 북의 몸통을 구성하고, 소리를 내는 양면은 소가죽을 사용한다. 이때 가죽의 한쪽 면은 암소 가죽을, 다른 쪽 면은 수소 가죽으로 만든다. 사전을 펼쳐보니 법고를 연주해서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것은 진(陳)을 치고 있던 군사들이 북소리가 울리면 전진해 적을 무찌르는 기세와 같은 것이라고 풀이해놓고 있었다. 법고는 축생들의 번뇌를 없애는 응원가인 셈이다. 그날 새벽 나도 얼마간의 위안과 지지를 받았으니까. 사찰의 법고는 구원(救援)의 북소리다.

또 다른 북소리가 있다. 영화 위플래쉬(Whiplash)의 재즈 드럼을 기억하시는지. 유명한 섹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Charly Parker)와 재즈 드러머 조 존스(Jo Jones)의 이야기를 오마주한 영화 속에서 스승과 제자는 피눈물 나는 득도의 과정을 통해 온몸을 불사르는 예술가의 영혼을 보여준다. 위플래쉬의 재즈 드럼은 열정(熱情)의 북소리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파워풀한 드럼 연주자로는 레드 제플린의 존 보냄을 꼽는다. 그가 홀로 연주하는 Moby Dick(Led Zeppelin 2)이나 그의 애칭을 따서 만든 Bonzo's Montreux (CODA)는 메탈드럼의 진수다. 그는 1980년 33세의 나이로 과음으로 질식사했다. 천재의 요절이었다. 존 보냄(John Bonham)의 북소리는 비운(悲運)의 북소리다. 사람이 가는 길이 인생의 수만큼 있듯이 북소리도 북의 개수만큼이나 존재할 것이다.

선운사와 위플래쉬와 존 보냄의 북소리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북에서 나는 소리지만 종교적으로, 예술적으로, 음악적으로 모두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공감하시는지. 새로운 관점은 사물의 유사성에서 차별성을 발견해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여기엔 같은 사물이 지닌 다른 이면을 재빨리 알아채고 온 몸을 열어 이입하는 감수성이 기본이다. 이 방면의 탁월한 선두주자는 시인이다. 잎새에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도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자 했으니까. 이들은 생활의 모든 접점이 인문이고 수시로 어디론가 떠나는 역마살의 인생을 산다. 마주치는 세상의 농밀한 감수를 통해 그곳으로 다시 새로운 관점을 풀어놓는 매우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 가을 당신에게 들려오는 북소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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