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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문화에 음식윤리를 칠할 때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18-10-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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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숙명인가? 한세상 살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 네 요소로 이루어진 틀을 우리가 사는 집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부분 가족으로 태어나는데, 가족은 사회에 속하므로, 자연스럽게 사회 구성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는 집의 바닥 또는 기초에 빗댈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분업과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경제가 활성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는 집의 기둥 또는 들보에 빗댈 수 있다. 이젠 복잡해진 사회와 경제를 유지하고 외부 침략도 막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집의 지붕 또는 벽에 빗댈 수 있다. 이제 집은 꼴을 갖추었는데 문화는 어디에 빗댈 수 있을까? 문화는 집단이 생활하는 스타일이고,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문화를 짓고 가꾼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집의 전체 모습에 빗댈 수 있다.

그렇다면 집의 어느 부분이 집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까? 집의 바닥일까? 기둥일까? 지붕일까? 아니면 집의 전체 모습일까? 아마도 정체성은 집의 전체 모습, 즉 문화가 가장 잘 보여줄 것 같다. 한옥이나 양옥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음식으로 눈길을 돌려 음식과 네 요소를 연결해 보자. 단순히 글자를 조합하면 음식정치, 음식경제, 음식사회, 음식문화가 될 텐데, 왠지 음식문화가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아무튼 어느 것이 음식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까? 역시 음식문화가 아닐까? 집단의 정체성을 문화가 표현하듯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정체성을 음식문화가 표현한다는 생각은 꽤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 집단의 문화를 음식에 적용하면 음식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음식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한 집단의 음식문화는 사람들의 음식이 그 집단의 생태(정치, 경제, 사회를 포함한다)에 가장 알맞게 적응하고 반응한 결과다. 그런데 집단의 생태는 늘 변화하기 때문에 음식문화도 생태 변화에 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 변화의 결과는 살아남는 것이므로 차라리 진화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가 진화하듯 음식 문화도 진화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음식문화의 진화가 좋고 나쁨(good or bad)이나 옳고 그름(right or wrong)을 꼭 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집단의 좋아함이나 싫어함(like or dislike)을 방향타 삼아 그저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음식문화의 진화는 좋은 방향 또는 옳은 방향을 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음식문화의 진화가 음식에 대한 바른 생각과 태도, 혹은 좋은 음식을 제대로 만들고 팔고 먹자는 음식윤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음식문화가 좋음과 옳음을 향해 가기를 원하지 않을까? 살충제 계란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감과 붓으로 우리 집을 칠할 필요가 있다. 음식문화의 집에 음식윤리를 칠하자는 말이다. 물론 칠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지만, 음식윤리를 칠하면서 참과 좋음도 아울러 가꾸고 보여주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선미’를 갖춘 바람직한 음식문화의 집을 가꾸자는 말이다. 오래된 집에 새 페인트를 칠하듯 이제는 우리 음식문화에 음식윤리를 곱게 칠할 때가 왔다. 낡은 집도 가꾸면 좋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언제나 좋음, 곧 행복을 향해 먹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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