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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이 '봉황'이 될 수 있었던 이유...탁월한 영어 실력

마윈의 영어 이름은 ‘Jack Ma’

윤진웅 기자

기사입력 : 2018-09-12 08:37

우리는 흔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일컬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한다.

가까운 중국에서는 ‘닭 둥지에서 봉황이 나왔다’고 표현한다.
중국에서 봉황이 된 대표적인 인물을 물어보면 대부분 마윈(54세) 알리바바 회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중국’과 ‘성공’두 가지 키워드만 가지고도 쉽게 떠오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윈을 찾아가 이런 표현을 알고 있냐 물으면 웃으며 ‘From rags to riches(무일푼으로 부자가 되다)’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알려진 것처럼 마윈의 영어가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또 마윈의 삶은 영어를 떼놓고 얘기할 수가세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윈에게는 영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 방향을 국내(중국)만이 아닌 세계로 펼칠 수 있었다. 영어야말로 마윈이 ‘봉황이 된 Rich’일 수 있는 이유다.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이 청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미지 확대보기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이 청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마윈은 1964년 저장성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마윈의 부모님은 중국 전통 공연을 하는 예술가였다.

마윈은 어릴 적부터 영어에 매력을 느껴 배우고 싶었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은 마윈에게 핑계가 되지 않았다.

마윈은 9년 동안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항저우 국제 호텔로 달려가 머무는 외국인을 상대로 도시 곳곳을 무료로 안내하는 등 영어공부에 집념을 쏟았다.

그 당시 펜팔 하던 외국인 친구를 통해 마윈은 자신의 이름이 외국인에게 발음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윈의 외국인 친구는 마윈에게 ‘Jack’이라는 영어 이름을 선물했고 현재까지 마윈의 영어 이름은 ‘Jack Ma’다.

그는 두 번의 낙방 끝에 항저우 사범대학에 들어가 영어를 전공했고 항저우 과학기술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영어는 마윈에게 사업을 꾸릴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마윈의 첫 창업도 영어와 관련된 통역사무소였다. 비록 창업에 실패했지만 이를 통해 미국을 오가면서 인터넷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1995년 중국 최초로 인터넷 기업인 ‘옐로우 차이나’를 창업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탓인지 또다시 실패했다. 하지만 마윈은 반드시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윈은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일하다 우연히 만리장성 가이드를 맡게 됐다. 마윈은 외국인 1명을 상대로 안내를 맡았는데 그 외국인이 바로 야후의 창립자 '제리양'이었다.

우연한 인연을 계기로 훗날 야후가 알리바바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역시 영어가 가져다 준 인연이었다.

마윈은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푸대접이 이어졌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 그만두고 함께하자고 말하자 5분 만에 전원이 동의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마윈은 1999년 1월 동료 17명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했다.이미지 확대보기
마윈은 1999년 1월 동료 17명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마윈은 1999년 1월 동료 17명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하면서 성공신화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알리바바에게 자금 부족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가 도산 될 위기에 알리바바를 살린 건 다름 아닌 만리장성의 인연 제리양이었다.

제리양은 마윈에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소개했다. 마윈은 6분만에 손 회장을 설득해 2천만 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그 후 알리바바가 상장하고 578억 달러가 되면서 3000배의 성장을 이뤄냈다.

마윈의 사업은 쭉쭉 뻗어 나갔다. C2C(Customer to customer) 거래 기업 '타오바오'를 설립했고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도 출시했다.

마윈의 만리장성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5년 대형 파트너가 필요했던 마윈에게 야후는 10억 달러를 주고 알리바바의 지분 40%를 사들였다.

대신 실적이 부진하던 야후 차이나 운영권을 알리바바그룹에 넘겼다.

알리바바가 설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윈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알리바바가 설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윈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2014년 마침내 마윈은 알리바바를 뉴욕증권시장에 상장시키는데 성공한다. 알리바바의 거래가격은 93.89달러로 공모가인 68달러 대비 38.07% 높게 장을 마감했다.

알리바바는 이처럼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갖게 됐다.

단순히 영어가 좋다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무료로 가이드를 하며 언어를 배운 작고 마른 소년이었던 마윈은 알리바바라는 거대한 기업의 창업자로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세계적인 CEO가 됐다.

어쩌면 마윈은 경영자의 운명을 타고 났을 수도 있다.

마윈은 “각종 30개 직업에 지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가장 쉽게 취직이 가능한 한 패스트푸드점에 24명이 지원해서 23명이 붙었다. 한명이 떨어졌는데 누구냐면...바로 나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들은 마윈이 직접 경영을 하겠다는 결심의 발판이 됐다.

경영을 배우고자 했던 마윈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도전해 10번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마윈이 하버드에 도전할 수 있던 패기와 세계적인 경영자로써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영어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았던 영어 실력은 대학 입학부터 알리바바의 3000배 성장 그리고 미국 비즈니스 진출까지 마윈의 모든 인생을 연결시켰다.

만약 마윈에게 영어라는 무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알리바바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마윈이 지난 10일 은퇴 계획을 밝혔다. 교육현장으로 돌아가 중국의 시골 교육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윈의 은퇴가 중국 정부에 밉보인 탓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마윈이 보여준 삶의 태도와 성공 신화는 중국 정부의 개입이라는 음모론보다 마윈의 자발적인 선택이다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쉼없이 달려온 마윈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윤진웅 기자 yjwdigital@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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