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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48)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나쁜 상황이 있을 뿐 ???

기사입력 : 2018-08-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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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변호사·소설가)
영화 [신과 함께]에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말을 명대사로 뽑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여러분은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과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입니다. 성선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선하다는 것이고 성악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주장입니다. 인류의 스승들은 성선설의 입장일까요, 성악설의 입장일까요?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는 나쁜 상황이 닥쳤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상황에서는 굳이 악하게 행동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쁜 상황에서도 모든 인간이 선한 행동을 추구할 수 있다면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쁜 상황도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하려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선을 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대사를 평가해 보겠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본래 선한데 나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 뿐”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것이 위 대사의 참뜻이라면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한 행동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나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승들은 어떤 입장일까요? 성선설의 입장일까요, 성악설의 입장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스승들은 성선설과 성악설 어떤 입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과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극히 선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에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극히 악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인간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견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실상을 보는 것과 견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인간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견성할 수 없고, 견성하지 못하면 인간의 실상을 알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견성하였다고 하면서 인간의 실상을 모른다면 그는 진짜 견성한 것이 아닙니다. 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락한 인간의 실상을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중에서도 엘리트였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원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인간의 실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실상을 덩굴줄의 비유로 설하였습니다. 공자 또한 욕심에 빠져 살고 있는 소인(小人)들의 모습을 보면서 군자(君子)의 모습을 구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혼을 가꾸라고 설파한 것입니다.

요컨대 스승들은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과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타락 이전의 인간의 모습에 방점을 찍으면 성선설, 타락 이후의 인간의 모습에 방점을 찍으면 성악설이 됩니다. 그러나 성악설과 성선설은 반쪽짜리 이론에 불과합니다. 선하게 창조된 인간이 악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모두 설명하지 않으면 인간 본성을 정확하게 기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은 없다. 오직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신과 함께]의 대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불성(佛性)이 존재한다는 만유불성(萬有佛性)의 가르침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만유불성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에서 혜능대사는 “선지식들이여 인간의 성품은 원래 청정하여 모든 법이 인간의 본성에 들어 있으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고 망념의 뜬구름에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혀지시나요? 강정민(변호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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