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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페르시아 설형문자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20)]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기사입력 : 2018-06-2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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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암각화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굵고 뾰족한 설형문자를 썼다. 한자(漢字)와 마찬가지로 회화문자(그림문자)에서 생긴 문자이다.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만든 펜으로 새겨 썼기 때문에 문자의 선이 쐐기 모양으로 되어 설형문자라고 한다. 설형문자를 발명한 것은 수메르인(人)이며, 수메르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우루크의 에안나 신역(神域)의 제4층(우루크 후기)에서 발견된 회화문자였다. 발견된 문자의 수도 많은데, 현재 알려진 문자의 수는 약 1000자에 달한다.

그 다음의 제므데드 나스르기(期)에서는 회화문자에서 설형문자로 발전하는 과정의 형태를 보여 주며, 동시에 표음화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초기 왕조시대에 이르면 설형문자는 일반화되고, 표의·표음문자가 병용되었다. 바빌로니아 남부를 통일한 셈계의 아카드인들은 설형문자를 채용하여 아카드어(語)를 표기하였다. 그로부터 표음문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커지고, 표의문자의 수는 줄어들었다. 아카드어는 제국 멸망 후에도 국제어로서 오리엔트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수메르 상형문자와 설형문자는 결국 오늘날의 세계를 주도하는 서구문명의 견인차 노릇을 담당했다. 서구문명은 희랍-로마문명과 유대교-기독교문명을 양대 근간으로 삼고 있다. 수메르 문명이 신화 종교 역사 법률 교육 제도 언어 문자 문학 예술 등과 같은 정신문화뿐만 아니라 농업 공예 건축기술과 같은 물질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자 문명 덕이며, 이를 수메르의 자문명이 전승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문자문명 덕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메르 민족은 아카드인에 통합, 멸절되었는데 이는 수메르 왕조가 애급 왕조처럼 장구하지 못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또한 수메르 문자문명 역시 후대의 여러 설형문자로 끝나 버렸다. 애급 상형문자가 전승, 발전하여 알파벳의 모태가 된 사실과 견주면 문자문명의 기원을 담당했던 그 영광은 애석하게도 과거의 것으로 머물고 만다.

최초의 문자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과 수메르어의 계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수메르인과 가까운 종족이 과거에 없었으며, 수메르어와 비슷한 언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현재 수메르인의 후손은 남아 있지 않으며 수메르어의 후대어도 남아 있지 않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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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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