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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문자의 기원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17)]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기사입력 : 2018-06-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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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암각화
문자의 기원은 구석기 중기인 BC 5만년경 돌이나 뼈에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새긴 조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그후 점차 흔해져 BC 1만년경에는 선사인류(先史人類) 문명인이 흔히 사용하던 그림문자가 된다.

초기 그림문자는 단지 기억을 보조해 주는 수단에 불과했으며,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사용된 것은 인류의 문명이 크게 발달한 중국·메소포타미아·이집트·마야 등의 문자를 들 수 있다. 문자가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매듭이나 막대, 조가비띠 등을 들 수 있다.

옛날 중국의 고대기록를 보면 “옛날에는 매듭을 매어서 다스렸는데, 뒤에 성인의 서계(書契)로 바뀌었다”고 하여, 일정한 약속 아래 매듭을 맴으로써 서로의 언약이나 중의(衆意)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보존해 두는 방법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알파벳의 기원이 된 문자는 오리엔트의 페니키아 문자이다.

그 기원은 시나이문자이며, 이 문자의 발달 초기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나 크레타의 회화문자의 영향을 받았다. BC 15세기에 이미 22자의 자음으로 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료(史料)는 BC 13세기의 비블로스왕 아히람의 관(棺)에 새겨진 각문(刻文)이다. 그 후 BC 11세기에 이르러 페니키아인의 식민·무역활동에 의하여 지중해 연안지방에 전파되었다(식민 페니키아문자). 그 후 이오니아를 경유하여 BC 8세기에 그리스 본토에 전해진 것이 모체가 되었고, 여기에 모음이 추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알파벳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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