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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술‧피부보호‧종교제의에서 미(美) 수단으로 진화…1915년 첫 근대화장품 박가분 등장에 일본분‧청나라분까지 가세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화장과 국내 화장품 100년 역사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기사입력 : 2018-05-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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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화장품과 화장술은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면서 종류와 방법도 다양했으며, 한국도 마찬가였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화장 특히 얼굴 화장이 오늘날에는 멋내기 수단이지만, 예전에는 멋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이유가 더 많았습니다. 원시 부족들은 적이나 짐승에게 공포감을 주려고 무서운 모습으로 화장을 했으며, 주술사는 신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종족의 안위를 구했습니다.

또한 동일한 화장을 통해 사회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하고,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시신의 얼굴에 검은색과 주황색의 파우더를 칠하고 나서 저승의 신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결혼을 앞둔 남녀의 얼굴화장은 부정한 기운을 쫒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우리네 전통혼례에서 나타나는 연지곤지로도 설명 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눈 화장은 아름다움의 표현과 동시에 눈물샘을 자극시켜 사막의 건조한 모래바람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미얀마 여성들이 강한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려는 전통 얼굴화장술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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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은 과거에는 위장술, 피부보호, 종교적인 과정과 혼재되다가 차츰 미의 수단으로 변해 왔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거에는 위장술, 피부보호, 종교적인 과정과 혼재되다가 차츰 미의 수단으로 변해가는 흐름을 벽화나 유물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화장이 아름다움의 수단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고대 이집트 후기라는 것이 통념입니다. 1922년 투탕카멘의 묘가 발굴될 당시 이집트 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상류여성은 화려한 화장대와 검은색, 녹색 계열의 연고와 붉은 분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손톱에도 색칠을 하였고, 머리칼은 열대나무 잎에서 추출한 오렌지색의 ‘헤나’로 물들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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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화장의 단계로는 피부를 뽀얗게 하는 기초화장의 ‘담장’, 볼 터치 같은 은은한 색조화장의 ‘농장’, 섹시한 짙은 화장의 ‘염장’으로 나눌 수 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이러한 이집트의 화장품과 화장술은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면서 종류와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화장을 돋보이게 하는 가발·향수·납분 등도 이때 등장했고, 화장 부위도 얼굴과 손에서 발톱 심지어 젖꼭지와 엉덩이까지 확대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귀족 여성을 위해 화장 담당 여성노예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들은 각기 마사지 담당, 매니큐어와 페디큐어 담당, 머리 손질, 눈썹과 머리카락 색조 담당, 거울담당, 의상담당 등으로 역할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미용실, 네일아트, 피부 마사지 숍, 의상실의 원조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경우 미를 추구하는 여성의 욕구에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화장 재료나 방법은 달랐습니다. 얼굴화장의 단계로는 피부를 뽀얗게 하는 기초화장의 ‘담장’, 볼 터치 같은 은은한 색조화장의 ‘농장’, 섹시한 짙은 화장의 ‘염장’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기초화장의 주재료는 천연 소재로써 곡물가루나 기름, 벌집 밀랍, 수세미·오이·창포의 식물 추출액, 달걀과 술을 섞은 화장수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색조의 경우는 홍화 연지, 눈썹용 굴참나무 재, 파우더용 조개나 진주가루, 납분 등이 주류를 이루며 전통화장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화장은 아니지만 화장의 마감이랄 수 있는 ‘향수’가 우리에게도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종류가 있었는데, 백단나무에서 내뿜는 ‘백단향’을 으뜸으로 쳤습니다. 백단을 우려 천에 묻혀서 향갑이나 향낭을 만들어 몸에 지니면, 은은한 향내가 주변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서양 향수와 다르긴 해도 용도는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호 개방 후, 시중에 판매된 최초의 근대화장품은 1915년 출시된 ‘박가분’ 화장품입니다. 박가분(朴家紛)이란 ‘박 씨네 집에서 만든 분’이란 뜻입니다. 박씨는 ‘박승직’으로 지금의 두산그룹 모태인 ‘박승직 상점’의 대표를 말합니다. ‘박가분’은 박승직의 아내 정정숙씨가 상점의 판촉물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아 주력상품으로 판매하였습니다. 시판 전 여성의 선호용품 1위는 고무신이었지만 단숨에 박가분이 이를 갈아 치웁니다. 그러자 서가분, 장가분 등 유사상품도 등장했습니다. 거기에 값 싼 ‘일본분’과 ‘청나라분’까지 가세했고, 설상가상 박가분에 납 성분이 들었다고 고소당하여 결국 1937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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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이 색조화장에 눈을 뜨게 되고 화장품 업계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1930년대를 풍미한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은 ‘동백 머릿기름’입니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1932년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고 윤기가 오래 지속되면서도 때가 잘 끼지 않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제품판매는 서성환의 ‘창성상점’이 담당하였으며, 이 회사가 지금의 아모레 퍼시픽입니다.

1940년대 말에는 ‘동동구리무’가 대유행이었고, 그 중심에는 ‘럭키크림’이 있었습니다. 제품을 시판한 회사는 현 LG그룹의 모태가 되는 ‘락희화학공업사’입니다. 이 당시 크림을 ‘동동구리무’라고 불렀는데 행상들이 북을 ‘동동’ 치면서 크림의 일본식 발음인 ‘구리무’를 외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럭키크림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아마쓰구리무’, ‘동동구루무’ 등 많은 동동구리무가 있었지만, 럭키크림의 동동구리무는 미국 유명 여배우 디아나 다빈의 사진을 크림용기에 붙여 외제 이미지를 살렸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값도 유사 제품 보다 훨씬 비쌌지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판매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 하겠습니다.

1950년대는 전쟁 여파로 생산 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어 화장품도 주로 외제품을 썼습니다. 특히 미군부대 PX에서 암암리에 나오는 미제 화장품은 그나마 경제력이 있던 여성들의 선호 대상이었지요. 그러던 중 여성제품이 아닌 남성용 머리 화장품 ‘ABC포마드’가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에서 선보입니다. 피마자기름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식물성 ‘ABC포마드’는 출시와 더불어 전국을 강타하면서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이라면 으레 ‘ABC포마드’로 외출 차림새를 마감 하였습니다.

60년대 히트작은 프랑스 유명화장품 회사인 ‘코티’와 기술 제휴로 등장한 태평양화학의 ‘코티 분백분’입니다. 코티분은 70년대에 휴대가 편한 콤팩트나 케이크 종류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식었지만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제품입니다. 한편 60년대 후반 전 세계 젊은이에게 영향을 끼친 히피문화와 외국 팝스타나 배우들의 외모를 통해 국내 화장품 트렌드에도 변화를 가져옵니다. ‘아이섀도’가 본격적으로 유행되고, 눈가에 반짝이는 ‘펄 섀도’ 화장도 전혀 어색치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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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1980년 12월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화장품 시장은 출렁거립니다. 컬러TV를 통해 여성들이 색조화장에 눈을 뜨면서 화장품 업계도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더욱이 1983년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면서 화장품 전국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이 당시 인기 제품으로는 럭키에서 만든 ‘드봉’ 브랜드입니다. ‘소피 마르소’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여, TV에서 ‘드봉’하며 입술을 오므리는 소피 마르소의 모습은 여성은 물론 많은 남성의 뇌리에 각인되었으며, 동일 제품 판매 1위의 영광도 누리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생겨났으며, 2000년대에는 샤넬, 랑콤, 디올,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명화장품과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기술력을 증진시켜 마침내 세계인의 화장품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와 K-팝 열풍으로 일본, 중국은 물론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화장품을 단연 으뜸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홍남일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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