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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오월 숲에서 만나는 귀부인-큰꽃으아리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긴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들과 인사하는 일이다. 어제 본 꽃은 다시 만나 기쁘고 오늘 본 꽃은 첫 만남이라 더욱 설레고 반갑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 천변의 도로를 달리는 일만으로도 뿌듯했는데 꽃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숲속의 꽃들이 궁금해져 산길을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월의 숲은 이미 신록이 짙어질 대로 짙어져 초록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렇다고 오월의 숲이 초록 일색이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잎보다 먼저 피었던 꽃들이 지고 나면 숲은 또 초록 이파리 사이로 새로운 꽃을 내어 달고 ‘삶은 죽을 때까지 아름답다’고 소리 없는 찬가를 부르기 때문이다. 오월의 숲은 수천수만의 은종을 매달고 바람 속에 향기를 풀어놓는 때죽나무와 쪽동백의 흰 꽃은 물론이고 나무 사이를 부지런히 날며 짝을 찾는 새들의 사랑 노래가 넘쳐난다.
나는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 산길의 끝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생기 넘치는 봄 숲을 거닌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땅싸리꽃의 연분홍과 각시붓꽃의 매혹적인 보랏빛에 취하다보면 신록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이 그친 아침 숲속을 거닐다가 병꽃나무 관목 너머로 커다랗고 탐스러운 흰꽃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클레마티스’라고 불리는 큰꽃으아리다. 초록의 숲 위로 미색의 여덟 장의 꽃잎을 활짝 펼쳐든 눈부신 자태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대부분의 야생화들이 작고 왜소한데 비해 큰꽃으아리는 이름처럼 큰꽃이라서 누구라도 한 번 눈에 스치면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숲 속에 피는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듯이 오월의 숲에서 큰꽃으아리를 만나는 행운은 쉽지 않다. 큰꽃으아리는 개체수가 많지 않거니와 숲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꽃 피는 때를 맞추는 일도 쉽지 않고 설령 때맞추어 찾아갔다고 해도 상처 없는 온전한 꽃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큰꽃으아리는 2~4m 정도 자라는 덩굴나무로서 키 작은 나무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는 미나리아제비과 식물이다. 속명 클레마티스(Clematis)는 ‘마음이 아름답다’는 뜻을 갖고 있다. 꽃은 가지 끝에 한 송이씩 달리고 국내에서 자생하는 클레마티스 속 식물 중 지름이 5㎝ 정도로 가장 큰 꽃에 속한다. 꽃처럼 보이는 부분은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 진화한 것이며 8개이고 암술과 수술이 다수이며 암술대에는 갈색털이 있다.

희고 커다란 꽃받침열편은 숲속을 오가는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한 장식이자 치밀한 작전인 셈이다.
큰꽃으아리를 찾는 곤충은 거의가 딱정벌레다. 딱정벌레는 벌이나 나비처럼 우아하게 꽃 위에 내려앉지 못한다. 마치 비행이 서툰 조종사의 착륙순간처럼 불안하고 뒤뚱거리며 매우 서툴다. 큰꽃으아리의 커다란 아이보리색 꽃받침열편은 딱정벌레의 서툰 착륙을 안전하게 도와주는 활주로가 되어준다 이렇게 꽃을 찾아온 곤충들은 달콤한 꿀샘을 찾아 꽃 속을 헤집으며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 큰꽃으아리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들은 딱정벌레나 꽃하늘소 같은 마구잡이로 휘젓는 사나운 곤충들이다보니 꽃받침열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까닭 없이 피는 꽃이 없고, 모든 생명에겐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오월의 숲에서 만나는 큰꽃으아리는 우아한 귀부인의 자태를 지녔지만 자신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들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제 몸에 상처를 기꺼이 허락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지만 꽃과 곤충들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이처럼 어여쁜 꽃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구한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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