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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추락하는 원·달러 환율과 한국판 플라자 합의 밀약설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기사입력 : 2018-04-0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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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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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끝내 1000원 선 붕괴, 한국판 플라자합의 밀약설의 진상은? 미국증시 다우지수 가상화폐 비트코인까지 흔들.

환율이 심상치 않다. ·


4일 미국 증시와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하루 전 1054.2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일 대비 2.4원 내린 것이다. 달러당 1054.2원 환율은 2014년 10월 29일의 달러당 1047.3원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김현종 무역대표가 한·미 FTA 재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힌 후 3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일주일 간 무려 원·달러 환율이 26.9원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1000 선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환율의 급등은 미국증시 다우지수와 가상화폐 비트코인까지 영향을 준다. 특히 가상화폐에서는 환율 변동으로 김치 프리미엄이 춤추고 있다.

요즘은 환율 소동은 마치 23년 전 플라자 호텔의 소동을 연상케 한다.

플라자 호텔은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인 센트럴 파크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111년 전인 1907년에 지어진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던 크리스마스 코미디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2)' 를 촬영한 무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호텔은 지금 인도 재벌이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다섯 나라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등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은 선진 7개국 모임인 G7 또는 20개국 모임인 G20가 해마다 열려 재무장관들이 수시로 만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만남이었다.

당시 회의를 소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베이커가 주도했다. 그때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로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일본과의 교역에서 적자가 심각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미국이 무너지고 일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집한 회의가 바로 플라자 회의다. 회의에 초대받은 다섯 나라의 구성도 당시로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주요 현안들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왔다.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함께 승리를 거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그 주역이다. 전후 체제는 곧 이 5개국이 꾸려가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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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끝내 1000원 선 붕괴, 한국판 플라자합의 밀약설의 진상은? 미국증시 다우지수 가상화폐 비트코인까지 흔들.


미국 뉴욕 플라자 회의에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이 빠졌다. 그 대신 일본과 독일이 들어갔다. 그때 5개국의 선발 기준은 경제력이었다. 경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보다는 돈 있는 나라들끼리 나서 세계적 현안을 논의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날 국가 간 협의체의 중심이 되어 있는 G5과 G7 그리고 G20 정상회의도 그 뿌리는 플라자 호텔 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 재무장관들은 그 회의에서 ‘협조 개입을 통한 달러 약세 유도’라는 그 이전까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밀 합의를 했다. 5개국 정부가 목표 환율을 정해 놓고 그 선에 이를 때까지 미국 달러화는 매각하고 일본 엔화는 사 모으기로 담합을 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플라자합의다. 뉴욕 플라자 호텔 회의에서의 합의를 줄여 그냥 ‘플라자합의’라고 부른 것이다.

플라자합의 이후 실제로 환율이 크게 변했다. 미국 달러는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일본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달러당 260엔 선을 오르내리던 엔·달러 환율이 플라자합의 이후 세 달 간 달러당 80엔대까지 내려갔다. 인류가 변동환율 제도를 도입한 이래 가장 큰 폭의 변동이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세계 경제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미국은 달러 약세에 힘입어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무역수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반면 일본은 엔고 때문에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길고 긴 고통이 시작됐다.

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달러 약세를 지향한 플라자합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고민을 해결해주는데 가장 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선진국들 즉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불리한 대목이 많았다. 그런 만큼 선선히 동의해 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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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대목에서 당시 미국의 리더십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지만 사실은 협박과 다름없는 강압을 한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그때 꺼내든 협박 카드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협박은 관세무역일반협정으로 불리던 GATT에서의 탈퇴였다. 당시 GATT는 무역 규제를 억제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끈이었다. GATT 탈퇴는 중상주의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협박카드는 미국 달러화의 무제한 발행이다. 달러의 공급량을 무한대로 늘려 부족한 재정을 메꾸겠다는 으름장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만큼 가능한 협박이었다.

세 번째 협박은 지구촌 경찰로서의 임무 포기였다. 적자 해소를 위해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더 벌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GATT 탈퇴와 달러화 무제한 발행 그리고 소련의 군사력 팽창 등은 서방 선진국들이 당시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은 이에 앞서 1971년에도 베트남 전쟁으로 거덜이 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브레튼우즈체제의 기본 축인 미국 달러화 금태환 제도를 취소한 적이 있다. 달러를 미국 은행에 제시하면 언제든지 온스당 35달러의 비율로 바꿔 주기로 한 것이 달러금태환제도다. 2차대전 직후 전승국 대표들이 브레튼우즈 골짜기에 모여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발족하면서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어 준 데에는 미국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그러나 1971년 자국 경제가 어렵게 되자 금 태환을 독단적으로 중단해버리고 말았다. 이 조치로 미국 경제는 크게 호전되었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심각한 경제 공황을 겪어야 했다. 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경제공황도 그 발단은 미국의 금 태환 중단에서부터 시작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내세운 세 가지 협박카드는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보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쇼크가 훨씬 더 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여곡절 끝에 1985년 9월 22일 선진 5개국들은 플라자합의를 하기에 이른다. 달러 태환 정지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서방 선진국들로서는 미국의 협박을 무조건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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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미국을 다시 살려냈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을 경제적 치적이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너무 존경한 나머지 수도 워싱턴 DC의 관문인 내셔널공항의 이름도 레이건 공항으로 바꾸어 버릴 정도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 시절 8년을 거치면서 성장률 고용지수 경상수지 재정건전도 등 미국의 거의 모든 거시경제지표가 좋아졌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적 성공은 플라자합의에서부터 연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레이건의 플라자합의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다. 지금의 미국 경제문제도 레이건이 주도한 플라자합의 같은 방식으로 해결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그 중심에 미국의 집권 여당인 공화당과 지금 대통령인 트럼프가 있다.

세계를 상대로 통화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역대 두 대통령 즉 닉슨과 레이건은 공교롭게도 모두 공화당 소속이었다. 같은 당 소속으로 미국 경제를 일으킨 선배 정치인에 대한 존경심이 공화당에 흐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트럼프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레이건 전 대통령을 지목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레이건 전 대통령을 보고 정치를 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는 트럼프의 슬로건도 사실은 레이건의 대선 캠페인에서 따 왔다. 법인세를 줄이는 트럼프의 세제개혁안 역시 레이건의 이른바 래퍼곡선 이론에 입각한 작은 정부론과 맞닿아 있다.

플라자합의와 레이거노믹스에 힘입어 개선되던 미국 경제는 이후 미-소 군비 경쟁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악화됐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레이건 대통령 때보다 더 크게 늘어나 있다. 레이건 취임 당시와 많이 닮아 있다. 트럼프는 이런 경제난 속에서 대통령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취임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첫 인터뷰에서“달러 강세는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 이후 미국 달러화는 실제로 최근 1년 간 꾸준히 약세가 되어왔다.

지금 미국의 금융환경만 놓고 보면 달러는 강세 쪽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연준이 양적 완화에서 벗어나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의 평가절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이다.

어찌된 일인지 미국 달러화는 트럼프 취임 이후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도 평가 절하되어 왔다. 미국 대통령의 달러 약세 열망이 환율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물론 1985년 플라자합의가 그대로 재현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영향력이 그때보다 훨씬 못해진 데다 미-소 냉전구도도 사라진 상태다.

중요한 것은 달러 약세로 경제난을 해소하고자 하는 레이건 식의 미국 애국주의가 트럼프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 전략은 플라자 합의와 노선을 같이한다. 환율을 통해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려던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을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달러화 가치의 이상 하락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레이거 노믹스와 너무 닮았다.

미국 뉴욕증시 일각에서는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미국과 일본 간 엔화 절상 합의인 ‘플라자합의’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미국 백악관은 한
·미 FTA 개정 협상에서 한국 측이 더 이상 환율 상승을 겨냥한 환율조작을 하지 않기로 하는 부속합의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판 플라자합의 설이 나도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 발표까지 겹치면서 원화 절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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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지난달 30일 “환율 관련 사항을 한
·미 FTA 부가합의(sub-agreement)에 넣었다”고 말했다. “한미 FTA 협상과 환율 논의는 별개”라는 한국 정부의 해명과는 온도 차가 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 취임식을 마친 뒤 “환율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환율 얘기는 조심스럽다.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가급적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월 원·달러 환율이 1050~1060원대로 급락했을 당시 “환율 급락이 과도하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시장 자율에 맡기되 과도한 쏠림이 있을 때 정부나 한은이 이를 조정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시장 움직임을 살피겠다”고 했었다. 급격한 원화 강세에 적극적인 구두개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이 총재의 발언은 조심스러웠다.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김대호 소장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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