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성은 동질성의 상징에서 부족국가 거치며 국가권력의 상징으로…노비나 천민은 고종 때 비로소 성 얻어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성(姓)과 이름의 유래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기사입력 : 2018-03-19 12:51

TV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 암사자와 새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미 암사자는 사냥을 하여 새끼에게 먹이고, 여타 동물의 접근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합니다. 이런 모습은 아주 오래 전 원시 수렵 시기에 인간에게도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모계사회’입니다. 모계사회에서의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존엄한 부류였습니다. 그래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크레타의 여신’ 조각상을 보면 젖가슴과 성기를 드러내며 다산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성은 사냥과 임신의 조력자이고 가족의 중심은 여성으로서, 자식들은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의 뜻에 따라야 했습니다.

같은 엄마에게서 나온 자식들은 단일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동질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성(姓)’입니다. 쉽게 말해 낳아준 엄마를 부르는 그 무엇이 바로 성이란 것입니다. 한자 성(姓)을 파자해 보면 계집 ‘女’와 태어날 ‘生’이 됩니다. 즉 ‘여자가 낳은 것’이란 의미이지요. 따라서 엄마 성이 ‘김’이면 자식은 모두 김의 자식이 되는 겁니다. 아울러 자식 구별을 위해 엄마는 자식 각각에게 이름을 주어 언제든지 주변으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합쳐진 한자로 「어두워져서 안 보일 때 부르는 소리」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엄마 중심의 모계사회는 농업이 정착되고 잉여 산물이 발생되는 시기가 되자, 싸움이 빈번한 남자 중심의 부계사회로 바뀌며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도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습니다.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모계사회나 원시 부계사회는 한자 문명 훨씬 이전이라 지금의 성처럼 한자의 金氏, 李氏가 아니고, 태양이나 땅 혹은 굳셈, 부자 등등의 개념이 있는 그 어떤 말이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낳아준 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성의 기원이다. 성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자식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낳아준 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성의 기원이다. 성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자식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씨족사회를 거쳐 부족국가에 이르면 ‘姓’은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한자 문명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우리의 경우 만주 지역의 부여국(扶餘)을 세운 해모수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주몽 고씨, 위만 조선의 위씨, 신라의 박·석·김, 발해 대조영의 대씨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성들은 왕족혈통의 표시이며 왕족 이외에는 그 누구도 차용할 수 없었고 나아가 일반인들이 ‘성’ 자체를 갖는 것도 불손하게 여깁니다. 다만 왕이 내려주는 성은 인정되었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내려주는 성을 ‘사성(賜姓)’이라 하는데, 왕은 성을 부여함으로써 신하들의 가문에 명예와 지위를 보장해주고, 성을 받은 신하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례로 고구려 왕 주몽은 극(克)씨·중실(仲室)씨·소실(小室)씨를, 신라 유리왕은 이(李)·정(鄭)·손(孫)·최(崔)·배(裵)·설(薛)씨 등을 사성하였다고 합니다. 백제는 근초고왕시대에 사(沙)·연(燕)·해(解)·진(眞)·국(國)·목(木)·묘(苗)의 8족과 왕(王)·장(張)·사마(司馬)·수미(首彌)·흑치(黑齒) 등이 전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을 말할 때 습관적으로 ‘본관’을 밝힙니다. 본관(本貫)이란 보통 시조의 출신지를 말하며, 친족의 범주를 나타냅니다. 본관제도는 중국 당나라에서 시행되었으며 고려 초기에 우리나라에 유입되는데, 이는 사회 통합과 왕권강화, 세수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후삼국을 통합한 왕건은 창업에 기여한 신하들에게 일정한 땅과 성을 하사합니다. 예를 들어 안동 김씨의 시조는 ‘김선평’으로 고창전투에 힘쓴 공로로 안동 땅 일부와 ‘김씨’성을 받아 ‘안동 김씨’의 조상이 되었으며, 이천 서씨의 시조 ‘서목’은 군사들이 이천 남한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하는데 역할을 하여 왕으로부터 이천의 땅과 ‘서씨’성을 하사받습니다.

씨족사회를 거쳐 부족국가에 이르면서 ‘성(姓)’은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씨족사회를 거쳐 부족국가에 이르면서 ‘성(姓)’은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이처럼 왕이 땅과 성을 주는 정책을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토(土)’ 즉, 땅이 바로 본관을 뜻하는 것입니다. 태조 왕건은 고려 통합의 의미로 전국의 군현 명칭을 개정하여 지역의 유력 층에게도 토성분정을 확대 실시함으로써 본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관은 구역에 따라 격차가 있었고, 신분과 직역(職役)에 따라 본관이 갖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본관을 통해 지역별·계층별로 편성함으로써 신분질서를 유지하고 징세조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토성분정은 조선 왕조에도 그대로 이어져 천민과 노비를 제외한 모두가 성과 본관을 갖게 되었고, 일반 평민을 뜻하는 ‘백성(百姓)’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참고로 노비나 천민이 성을 갖게 된 시기는 불과 130년 전인 1886년, 고종의 노비세습제폐지 령 이후입니다.

한편, 외국인이 귀화하여 성을 받은 경우도 많았는데 그 중 몇을 살펴보면, 우선 ‘화산 이씨’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성의 시조는 지금의 베트남 ‘리롱뜨엉 왕자’입니다. 리롱뜨엉은 1226년 가족과 신하들을 데리고 고려에 망명합니다. 귀화 당시 베트남은 ‘리 왕조’시대이었는데, 반란이 일어나 왕자의 신분으로 고려에 피신 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오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몽골과 전쟁이 났는데, 왕자와 남자들은 전투에 함께 참가하여 힘껏 싸웁니다. 이에 고종은 보답의 의미로 웅진의 화산(지금의 황해도 금천)에 살게 하였고, 화산 이 씨의 성과 함께 ‘용상’이라는 이름도 내렸습니다. 이용상의 후손들은 남한에만 현재 1700여명 있으며 매년 베트남에 있는 리 왕조 사당에 참배한다고 합니다.

‘퉁두란’은 여진족 장군 아라부카의 아들로, 용맹을 떨치며 조선 변방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는데, 태조 이성계의 무술과 인간 됨됨이에 감동하여 휘하 백호를 거느리고 이성계 군진에 투항한 사람입니다. 많은 전장에서 이성계를 보필한 공로로 ‘이지란(李之蘭)’이란 사명을 받고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릅니다. 청해 李氏의 시조로 남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이미지 확대보기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반면, 성을 바꿔야 했던 슬픈 사연도 있습니다. 고려가 망하면서 ‘왕씨 王氏’ 성을 가진 사람들은 갖은 핍박을 당합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제사를 받드는 고려 왕실 사람을 제외한 ‘왕씨’들에게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라는 교서를 내립니다. 그러나 많은 왕씨들은 부계의 성을 버리기 싫어, 왕(王)자를 변형한 玉, 全, 田, 琴, 馬, 金 등으로 고치고 사회 속으로 숨었습니다. 이들 중 ‘전흥 田興’은 본래 왕 씨였는데, 성을 버리고 ‘바우’라는 이름으로 태종 이방원의 잠저 노비로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글에 능통한 것이 발각되어 신분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남양 전田’의 성과 ‘흥’이란 이름을 주고 측근으로 중용합니다. 전흥은 훗날 의금부 제조와 한성판윤을 거치며 남양 전의 시조로 기록됩니다. 고대소설 「전우치전」의 실제 주인공 ‘전우치’는 증조할아버지가 바로 ‘전흥 田興’입니다.

‘이름’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처럼 살다간 사람은 몇이나 있겠습니까. 오늘날과는 달리 옛날에는 어릴 적 이름(아명)과 성인이 된 후의 이름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유인 즉, 어릴 적 이름을 좋게 지으면 귀신이 시기하여 일찍 저승으로 잡아간다고 믿어서 아명을 천하게 지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막둥이 등이 있습니다.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고, 고종 아명은 ‘개똥이’였습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남존여비 사상으로 여성이름이 없다고 믿는 분이 많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지금 봐도 멋진 이름이 수두룩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이름들만 살펴보면 구슬이·방울이·보배라는 이름이 나오고, 장미·매화·국화란 꽃 이름도 등장합니다. 또한 장희빈의 이름은 장옥정이며, 연산군의 사랑을 받던 장녹수, 여류시인 허난설헌, 명기 황진이, 성삼문의 딸은 성효옥, 명성왕후 이름은 민자영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예쁜 딸들의 이름입니까. 오늘날 ‘빛나리’와 같이 한자 이름은 잘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한자 우선이라 개똥이나 구슬이를 한자로 介同(개똥), 仇瑟(구슬)로 표기하였답니다.

성(姓)과 이름도 분명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 상식선에서 살펴본 ‘성명 유래’였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사진없는 기자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아우디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 RS e-트론 GT
아우디 e-tron GT vs. 아이오닉 5 N 비교할 수 있을까?
이번엔 더 무서운 차 끌고 나왔다! 벤츠 E 300 4MATIC AMG Line
국내 1, 2위 다투는 수입차, 벤츠 E와 BMW 5 전격 비교
숨은 진주 같은 차, 링컨 노틸러스 ... "여긴 자동차 극장인가?"
가장 현실적인 드림카, 벤츠 디 올-뉴 CLE 450 4MATIC
파격 변신한 8세대 BMW 5시리즈...520i M sport package, "엔트리 같지 않다"
모든 걸 다 가진 차 왜건..."볼보 V90 CC, 너 하나로 만족한다"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