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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미투와 아카시아 가시의 비밀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아카시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과수원길’이란 동요가 떠오른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로 시작되는 박화목 작사의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튀밥처럼 하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골 풍경이 그려지며 코끝을 스치는 그윽한 꽃향기에 절로 눈이 감겨오는 듯한 착각이 인다. ‘나도 당했다’는 미투 운동(#MeToo)이 들불처럼 번지는 요즘이다. 날마다 새롭게 터져 나오는 미투 폭로 기사를 접하며 나는 생뚱맞게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나무는 콩과의 상록교목으로 북미대륙이 원산인 아까시나무다. 이 나무는 1897년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월미도에 심어진 외래식물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60년대다. 미국인 선교사 루소의 권유로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복구를 위한 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시 때문에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빨리 자라고 빠르게 번져 산림녹화의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여름철 홍수예방과 산사태방지, 산성비와 공해에 대한 중화능력이 뛰어나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제공해 주는 이로운 나무로 우리 곁을 지켜온 나무가 아카시아나무다. 요즘은 아름다운 무늬와 단단한 재질을 이용한 고급가구와 장식용으로 쓰이면서 활용도가 한층 높아졌다.

특히 밀원식물로 4만2000여 양봉농가의 벌꿀 생산량의 80%가 이 아카시아 꽃에서 생산된다. 연간 약 5만 드럼의 꿀을 생산하여 1000억 원이 넘는 양봉농가의 소득을 올린다고 하니 소득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는 꽃나무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는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자라는데 기린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한데 특이한 것은 기린은 한 나무에서 5분 이상 잎을 뜯지 않는다고 한다. 그 까닭은 5분이 지나면 아카시아 나무들이 기린이 싫어하는 쓴맛을 만들어 잎으로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없는 나무들이라고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버리면 다음해에 나온 새 가지엔 더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카시아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양가가 많다고 따먹는 두릅나무 순이나 엄나무 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같은 아카시아 나무라도 초식동물의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는 가시를 촘촘히 내어달지 않는다. 나무들이 가시를 내어다는 것은 자신을 해치려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수단이다. 그래서 ‘초식동물이 사라지면 아카시아도 가시를 버린다.’고 주장하는 생태학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를 뒷받침 할 사례로 울릉도 특산식물 중 하나인 섬나무 딸기를 들 수 있다. 육지의 산딸기가 섬으로 옮겨져 진화한 이 식물은 고라니 같은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 살면서 가시를 버리고 대신 잎과 꽃의 크기를 키웠다. 신기하게도 섬나무 딸기를 육지에 옮겨 심으면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가시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리 보면 식물이 지닌 가시란 생태계에서 가장 힘이 없는 식물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가시를 달고 있는 나무야말로 가장 약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자기보호를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사는 아카시아 나무가 힘겹게 미투를 외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 위로 오버랩 되는 현실이 슬프다.

미투 운동은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힘없는 약자에게 강압적으로 행해진 성범죄에 대한 약자의 마지막 절규다.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종속관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배려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미투 운동이 안으로는 선하고 부드러운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위악을 떨며 날카로운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넘어서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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