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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부터 종교계까지 성추문 끝은 어디?…'미투(MeToo) 캠페인' 도덕성 회복 계기돼야

노정용 편집국 부국장

기사입력 : 2018-02-2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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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용 편집국 부국장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수십 년간 한국 문단의 대표로 군림해온 고은 시인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된 후 문화예술계에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 연극계를 좌지우지해온 연출 3인방(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대표,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도 연극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자행해온 성폭력의 진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고발은 문단과 연극계뿐만 아니라 영화‧연예계를 넘어 종교계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조만간 무용계에서도, 음악계에서도 성폭력 고발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촛불이 확산되어 횃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가장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종교계에서의 성폭력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 사제의 성추행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는 얘기다. 기독교계 잡지에 목회자 사모가 남편(목사)의 신도와의 불륜을 털어놓으며 상담하는 내용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이 문화예술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학과 직장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드러난 법조계의 성추행 충격은 물론, 문화예술계 출신으로 대학 강단에 섰던 배병우, 조민기 등의 성추행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강의를 잘하던 교수가 갑자기 학교를 떠나거나 안식년이 아닌데도 강의를 하지 않는 경우 대부분 성추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곧 체육계에서도 성폭력 고발이 잇따를 것이라고 체육계 인사는 전한다. 단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이 가진 권력 앞에 불이익을 두려워해 미루고 있을 뿐이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주범들은 모두 제왕적 지위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열아홉, 스물 살에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은 “그(이윤택)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그(이윤택)는 그곳에서 종교계의 교주였다”고 진술했다. 고은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단의 제왕’이었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그들은 연극에 출연시켜 준다는 핑계로, 문예지에 작품을 소개시켜 준다는 미명하에 추악한 짓을 자행해온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10여 년간 펼쳐온 거짓 연극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벗고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문화계의 거장으로 추앙 받으며 온갖 특혜를 누려왔던 가해자들은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되기만 바라며 추한 행동에 대한 반성은커녕 더 추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는 이 사태가 결코 마무리 되지 않으리라는 걸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연극은 끝났다. 당신들이 멋대로 주물러온 문화계의 권력을 내려놓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조용히 문화계를 떠나야 한다. 당신들이 없으면 문화계가 파탄날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도덕성을 회복한 문화계는 오로지 실력 하나만으로 더 건강하게 돌아갈 것이다.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을 따랐던 후배들은 당신들을 문화계의 선배가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사실을. 연희단거리패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한결같이 “(이윤택은) 나를 연극배우로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이윤택은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 꼴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화계에서는 그들을 선배를 넘어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서 존경해 왔다. 그런데 그들은 후배들을 제자나 자녀와 같은 존재로 보는 대신 자신들의 성적 욕망 해소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이다. 연희단거리패의 배우 오동식은 ‘나의 스승 이윤택을 고발합니다’라는 글로 문화권력의 힘앞에 침묵으로 동조했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문화예술계의 진보인사들의 침묵도 역겹다. 사회의 분노가 들끓자 마지못해 단체에서 제명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연극을 위해 가면을 쓴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 이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공허하다. 이번 기회에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노정용 편집국 부국장

노정용 부국장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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