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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㉒ 땅의 복을 초월하다

기사입력 : 2018-02-14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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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변호사·소설가)
인간의 이성에 기초하여 진리를 궁구한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는 땅의 복과 하늘의 복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요?

석가모니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이룰 당시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항마성도(降魔成道),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크게 3가지, 마귀의 부하들이 창과 화살로 석가모니의 생명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장면, 마귀의 딸들이 성적으로 유혹하는 장면, 마귀가 세계를 통일하는 제왕이 되게 해주겠다며 유혹하는 장면으로 대별됩니다. 예수가 물과 성령 세례 직후 광야에서 사탄에게 3가지 시험을 받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40일간 금식하여 굶주린 예수에게 사탄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봐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봐라,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줄테니 자기에게 절을 해보라며 유혹합니다.

마귀가 석가모니와 예수를 무엇으로 유혹하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땅의 복에 해당하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쾌락입니다. 석가모니와 예수가 이러한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땅의 복을 초월하여 오직 하늘의 복을 추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공생애(公生涯)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와 쾌락의 문제로 실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세상의 복을 초월하지 못한 채 사역에 투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어땠을까요? 논어 학이(學而)편 제1장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화가 나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는 말씀, 이인(里人)편 제16장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라는 말씀은 공자의 복에 관한 입장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이편 제16장에는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불기지 환불지인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공자에게 세상의 부와 명예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천명(天命), 즉 하늘의 도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공자는 천명을 깨달은 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하늘의 도를 펼치고자 노력합니다. 공자가 권력자들을 찾은 것은 오직 천명을 펼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땅의 복만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과 군주들은 하늘의 도를 설파하는 공자의 가르침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공자의 말씀에 자조와 한탄이 묻어나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펼치지만 결코 돈을 받지 않습니다. 아내 크산티페는 이러한 소크라테스가 불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현실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해 매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향한 열정과 사람들의 무지를 깨뜨리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위대하고 강력하며 현명한 아테네 시민인 그대 나의 벗이여, 그대는 최대한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쌓아 올리면서 지혜와 진리와 영혼은 거의 돌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 묻습니다. 또 ‘내가 돌아다니며 하는 일은 노인이든 청년이든 가리지 않고 여러분이 육신이나 재산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영혼의 최대의 향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생 게으름을 피울 만한 재주를 전혀 가져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일 즉 부, 집안일, 장교, 국민의회에서의 연설, 공직, 음모, 당파 등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오 나의 친구들이여 나의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나의 아들들이 덕 이상으로 재산이나 다른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내 아들들을 처벌해 주시오’ 라고 부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류의 스승들이 모두 땅의 복이 아닌 하늘의 복을 추구했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땅의 복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땅의 지혜가, 하늘의 복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당연히 하늘의 지혜가 깃드는 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땅의 복을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당연히 하늘의 지혜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늘의 복을 향해 달려갈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강정민(변호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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