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은 최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173차 정기총회를 열고 2018년 말까지 현재의 산유량 감산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합의에는 러시아 등 비OPEC 10개국도 감산 연장에 합의했다. OPEC 회원국이면서도 그동안 국내 정세 등으로 감산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받았던 나이지리아와 리비아도 2017년 생산 수준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감산합의가 별 효력을 발휘하지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셰일가스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셰일가스의 생산량이 극단으로 오르내리면서 국제유가를 마구 휘젓고 있는 것이다.
셰일가스란 이른바 셰일(shale)이라는 퇴적 암반층에 고여 있는 원유를 말한다. 모래와 진흙이 어우러져 퇴적하면서 굳어진 단단한 암석층에 함유된 원유와 천연가스를 통칭하여 흔히 셰일가스라고 부른다. 지하 암반층에 원유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 페르시아의 문헌에도 암반층 원유에 대한 기록이 간간히 나온다. 암반 원유는 워낙 깊고 또 지하 중간 중간에 길이 휘어져 있어 당시 인간의 기술로는 제대로 파낼 수가 없었다. 셰일지층에는 또 엄청난 양의 질소와 황 화합물이 뒤섞여 있어 근대에 와서도 캐내기가 쉽지 않았다.
1973년 석유파동 때도 셰일가스는 반짝 인기를 끌었다. 중동전쟁 이후 OPEC가 이스라엘과 서방세계에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원유생산의 감산을 단행했다. 그 바람에 국제유가는 폭등했다. 기존 원유의 가격이 급등하자 사람들은 또 다른 대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셰일가스를 보다 싸게 추출하기 위한 새로운 공법이 잇달아 개발됐다. 셰일가스는 그러나 석유파동이 끝나고 유가가 안정을 찾아가자 이내 잊혔다.
셰일가스 대중화 시대를 연 이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것은 2009년이다. 그에 앞서 미국에서는 2007년과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오바마는 미국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와중에 집권했다.
그때 오바마가 꺼낸 카드중 하나가 셰일가스의 본격 생산이었다.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요즈음에 비하면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비싼 원유가격은 미국의 산업 생산성에 결정적인 위협이 되고 있었다. 오바마는 셰일가스로 그 위기를 돌파하기로 했다. 새로운 셰일가스 추출법을 개발하겠다는 곳에 연방정부 자금을 집중적으로 밀어주었다. 그 결과 지하 암반층을 파고 들어가 싼 값으로 원유를 캐내는 새로운 추출법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원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2016년 한때 배럴당 20달러대 후반으로까지 밀렸다. 국제유가 하락은 셰일가스에도 큰 시련이었다. 새로운 추출법의 개발로 셰일가스의 시추 비용이 크게 떨어지기는 했으나 유전에서 대량으로 퍼 올리는 일반 원유에 비해서는 여전히 생산비가 높은 상태다. 국제유가가 떨어지자 미국의 수많은 셰일가스 업체들은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가동을 멈추었다.
요즈음 산유국들은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낮은 유가가 지속되면 산유국들이 모두 파산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등은 이미 부도 상태를 맞고 있다. 오일 달러로 떵떵거리던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다급해진 OPEC는 연일 감산 합의 발표를 하고 있다. 러시아도 국제유가 인상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OPEC과 러시아가 힘을 합하면 전 세계 원유공급의 90% 이상을 좌지우지 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의 국제연대 만으로도 국제유가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제유가는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산유국의 감산이나 이란-사우디의 전쟁소식에 크게 오르다가도 이내 다시 떨어지고 있다. 가격이 요동치는 폭만 더 커졌다.
산유국의 유가인상 시도를 가로막는 최대의 복병은 미국 셰일가스다. 한동안 생산을 멈추어왔던 미국의 셰일가스 업자들이 국제유가가 조금 오르자 다시 생산을 늘린 것이다. 그 바람에 원유 재고가 늘고 가격도 하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셰일가스는 산유국들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셰일가스는 산유국들의 가격 횡포 때문에 대중화되었다. 무지막지한 담합이나 오일쇼크가 없었다면 셰일가스는 지금도 그냥 땅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벌겠다는 산유국의 과욕이 셰일가스의 대중화를 부추겼고 그 결과 지금은 산유국들이 셰일가스에 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셰일가스는 그동안 가격인상의 횡포를 부려온 산유국에 대한 보복이자 저주인 셈이다.
국제유가 예측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래에는 주요 산유국들의 생산과 재고 상황을 제대로 체크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굳이 개별 산유국 실태 조사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산유국들은 OPEC 라는 이름으로 카르텔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 OPEC 통계만 보면 어느 정도는 가늠이 되었다.
최근에는 OPEC 회원국들간의 단결이 예전 같지 않다. 같은 회원국이면서도 서로 싸우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OPEC의 최대 산유국들인 이란과 사우디는 이슬람의 정통성을 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건곤일척의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 세습을 앞두고 이른바 수니와 시아 간의 종파 전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 싸움의 한 와중에 OPEC 인들 온전할 리 만무하다. OPEC로 보고되는 통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착오로 틀린 것은 부지기수이고 아예 처음부터 속일 목적으로 조작된 통계도 적지 않다. OPEC 주도로 감산을 합의해 놓고도 제대로 지키는 나라가 없다. 그러다보니 원유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고 그 결과 유가 예측도 계속 엇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셰일가스(shale gas) 변수까지 추가되어 국제유가를 흔들고 있다.
김대호 주필/경제학 박사 yoonsk8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