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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갈등 해결이 개인과 사회 흥망성쇠 좌우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산책(124회)] 선구자의 삶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17-10-18 09:37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사회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책략을 활용한다. 그 중에서도 제일 근본적이고 빈번히 사용되는 책략은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 ‘양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양심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려는 세력을 모으고, 그 세력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와해시키려고 한다고 여겨지는 개인이나 세력을 처벌하도록 만든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를 유지하고 지키는 방식은 양심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양심은 한 특정 사회의 윤리, 도덕, 행동규범 등이 내재화된 것이다. 양심의 일차적 목표는 사회 자체를 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양심은 결국 사회를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을 가지게 마련이다. 즉, 사회를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려고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동시에 사회를 유지하도록 목표를 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행동을 이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규칙 어기는 개인‧단체 억압해도


기존 틀 깨려는 힘 존재하기 마련


특히 예술‧학문분야서 잘 드러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윤리와 도덕, 그리고 행동규볌들을 공유하도록 가정과 학교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교육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욱을 실시한다. 물론 누가 어떤 내용을 어디에서 언제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국가가 결정한다. 이런 공식적인 교육 제도 외에도 다양한 비공식적 교육을 통해 개인의 양심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사회가 규칙이나 법을 어기는 개인이나 단체를 아무리 강하게 억압하려고 해도 기존의 틀을 깨려는 힘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예술분야나 학문분야에서는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기존의 것을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예술이나 학문은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다. 이처럼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힘과 그 틀을 깨려고 하는 힘 사이의 갈등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을 통해 사회는 변화해 나아간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정체되고, 그 궁극적 결과는 멸망하고 해체된다. 한 개인이나 사회의 흥망성쇠는 결국 지키려는 힘과 변화시키려는 힘과의 갈등을 얼마나 슬기롭게 풀어나가는지에 달려있다.

기존의 틀을 깨려는 개인은 항상 그것을 지키려는 거대한 힘과 맞서야 한다. 지키려는 힘은 공권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태여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처벌될 수 있다. 기존의 틀을 깨려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일차적인 힘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올 수 있다. 부부 사이에서도 기존의 질서를 깨려는 배우자를 설득하고 심지어는 이혼을 통해 처벌을 할 수도 있다. 조직에서는 친한 동료들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개화기에 태어나 시대를 앞서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동갑내기 두 여성, 나혜석과 김일엽의 인생항로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개화기에 태어나 시대를 앞서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화가 나혜석의 자화상.이미지 확대보기
개화기에 태어나 시대를 앞서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화가 나혜석의 자화상.

1896년 나혜석은 부유한 관료의 집안에서 넷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여고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유화를 공부한다. 귀국 후 여성화가 최초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한 그림 활동을 하는 한편 여러 신문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신여성으로서 맹렬하게 활동하였다.

1920년 부유한 집안의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와 결혼한다. 이 때부터 나혜석은 그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저항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은 인생의 낭비’라고 결심한 나혜석은 1930년 이혼한다. “이혼의 비극은 여성해방으로 예방해야 하고 시험결혼이 필요하다”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칼럼을 잡지에 기고하여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혼 고백서>이라는 글에서는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오. 오직 취미다. 밥먹고 싶을 때 밥먹고 떡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거와 같이 임의용지(任意用志)로 할 것이오 결코 마음의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니외다...(중략)...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중략)...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조관념과 여성에게 이중적 성도덕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위선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여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사회는 기존 양심 깨려는 힘에


무자비하리만큼 보복으로 대응


이런 과정통해 사회 변하고 진화


하지만 그녀가 맞닥트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거나 포용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자식을 두고 빈몸으로 쫓겨나는 이혼녀가 되었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는 남편에게 재결합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결국 자녀들과의 만남조차 거부당했다. 나혜석은 이혼당하여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받아 신경쇠약증까지 걸렸다. 이후 불교에 귀의하려고도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1948년 12월 행려병자로서 쓸쓸하게 사망하였다.

나혜석과 같은 해에 목사의 맏딸로 태어난 김일엽은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다 일본으로 유학 간 신세대 여성이었다. 40세의 남자와 22세 때 결혼했지만, 일본 유학시절 이미 본처가 있는 시인과 연애를 한 사건으로 이혼한 김일엽은 곧이어 일본 명문가 출신 남성과 열애에 빠져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아들을 일본에 두고 귀국한 그녀는 친구의 애인인 소설가, 신문기자 등과 인습을 깬 연애와 동거를 거듭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부장적인 사회인습에 숨막혀 하던 그녀는 “여성은 남성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라고 절규했고 여성은 남성을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고 부르짖으며 나혜석 못지않은 남성편력을 이어갔으며, 여성에게만 이중적인 도덕적 잣대를 강요하는 당시의 도덕관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갔다.

김일엽은 1927년 조선일보에 게재한 <나의 정조관>이라는 글에서, “재래의 정조관으로 말하자면, 정조를 물질시하여 일단 과거를 가진 여자의 사랑은 신선한 맛이 없는 진부한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정조를 잃은 것을 마치 어떤 보옥으로 만든 그릇이 깨어져서 못쓰게 되는 것같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조란 그런 고정체가 아닌 것입니다. 정조는 어디까지나 사랑이 있는 동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김일엽의 이런 대담한 주장은 그 당시보다는 훨씬 개방적인 현재의 시각으로도 상당히 파격이니 그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여성으로 파격적인 세속의 삶을 살다가 불교에 귀의한 김일엽스님.이미지 확대보기
신여성으로 파격적인 세속의 삶을 살다가 불교에 귀의한 김일엽스님.

이런 삶의 궤적은 나혜석과 비슷하다. 아마도 김일엽이 계속 사회에 맞서고 싸우며 남성편력을 이어갔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나혜석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 김일엽은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됨으로써 나혜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김일엽은 파격적이던 삶과 모든 속세의 인연을 끊고 불교에 귀의한다. 1928년 만공선사(滿空禪師) 문하에서 득도 수계(受戒)하고 1971년 입적할 때까지 수덕사에서 수도에 전념하였다. 결국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현실과 타협하고 동시에 현실을 뛰어넘은 그녀는 지금도 많은 비구니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사회는 기존의 양심을 깨려는 힘에 대해 무자비하리만큼 보복을 한다. 하지만 이들 때문에 사회는 변화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도움을 받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음으로 양으로 이런 선구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동시에 이런 선구자들을 외면하고 냉대하는 처벌을 동시에 가하는 이중적인 현실을 살 수밖에 없다. 시대를 앞서 갔던 선구자들의 삶을 보며 갑남을녀들은 시인 윤동주님의 고백처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이중적인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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