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김영란법의 가액 기준을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농축산·유통·화훼·골프 등 업계의 불만이 속출했고, 수많은 업종의 피해가 잇따를 것이란 보도가 이어졌지만 ‘연줄’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된다고 여겼던 대한민국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법 자체의 모호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법 적용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다”며 “청렴사회로 가기 위해 필요한 진통”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반부패 척결을 위해 오랜 세월 규범과 관행으로 정착돼 온 것을 우리가 단 시일 내에 법제화해 달성하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는 것.
기업들은 김영란법 대상은 아니지만 쌍벌제 때문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칫 ‘본보기’로 걸릴 경우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만들지 않았지만 골프 등 접대성 행사를 모두 중단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김영란법 제대로 알기’ 열풍이 불고 있는 재계에서는 법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을 초빙해 설명회를 여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형로펌과 회계법인, 권익위 모두 의견과 해석이 달라 매우 혼란스럽다”고 말해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3만원 이내는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계산하는 ‘카드 쪼개기’, 미리 결제해 놓는 ‘선결제’, 청탁자가 계산 전 미리 접대자에게 돈을 지급해 각자 계산하는 방법, 각자 계산한 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법 등을 사용하면 얼마든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이 법이 잠재적인 범법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10조원 규모로, 하루에 약 270억원이 접대비로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기업들은 법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시행 전부터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수년간의 입법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김영란법. 과연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자리 잡은 부패를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