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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음악가 윤이상 부녀의 슬픈 사연 담은 무용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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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푸른 시래기 같은 산청을 지나 검푸른 물살에 절임당한 아이는 시리고 비린 사연들을 기억의 오선지에 그려넣었다. 넓은 물길과 바닷길로 세상을 일구던 작곡가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속박은 사슬이었을 텐데 '선택'을 강요받았다. 칼날보다 무서운 건반과 현들의 경연, 질곡의 세월을 자신의 세상으로 만든 사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사유가 작품위로 스친다.

최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라만 댄스컴퍼니 제5회 정기공연으로 예술감독 정길만(국립무용단 단원, 세종대 겸임교수)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작곡가(아빠, 정길만), 여인(딸, 강윤정), 유년의 딸(이연지)의 슬픈 사연을 담는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자, 작곡가 윤이상의 일생이 탄생 100주년, 서거 22주년을 맞아 춤극으로 만들어 졌다.
세계 현대음악 5대 거장에 꼽히던 작곡가 윤이상(1917. 9. 17-1995. 11. 3)은 통영에서 성장했다. 방랑처럼 음악에 몰두했던 그의 음악 흔적은 슬픈 민족사에 걸쳐 있다. 이념은 편을 갈랐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윤이상을 동인(動因)으로 한 정길만의 데뷔작 '풀고가자­The First Moment'(2002)는 윤이상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동기화시킨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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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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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깊은 슬픔의 파고를 타고 먹먹함 곁에 불씨로 남은 사람을 그리는 애절한 부녀의 사랑이야기, 갇힌 공간속에서 눈물을 땀으로 여기며 딸은 성숙한 여인이 된다. 딸은 늘 살아왔던 창조된 공간의 판타지 속에서 '사랑과 영혼'처럼 영혼이 된 아빠와 상봉하고 세월의 부질없음을 이야기한다. 작곡가 아빠와 나눈 짧은 이야기만 남고, 세상 저 편으로 아빠의 영혼은 사라진다.

'떠난 자의 노래'의 안무를 맡은 정길만은 '중간단계' '반쪽 담긴 달' '마리아의 서울' '물그림자' '고요한 아침의 나라' '회색정원' '잠시 그을린 시간' 등 자신과 인생을 성찰하는 작품을 안무하였고, 주제 몰입도에서 진정성을 보인 '떠난 자의 노래'는 '1969. 6. 17. 윤이상'(2003), '베를린을 떠나다'(2010)에 이은 윤이상 소스의 4부작 완결판이다.
국립무용단의 '리진'을 비롯하여 '도미부인', 건군 60주년 '태극대동무' 등의 작품에서 조안무를 맡아 대작 안무가의 가능성을 보여준 정길만은 '떠난 자의 노래'에서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의 심리적 상태를 하이퍼리얼리즘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세심한 디테일로 묘사해 내었다. 무용수들의 강박적 독일어 반복 사용은 사실감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조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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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반복적 대사는 불안성을 대변한다. 누구야, Wer ist das?(베어 이스트 다스?)/ 딸 Tochter.(토흐터.)/ 어디야? Wo ist das?(보 이스트 다스?)/ 베를린 Berlin.(베를린.)/ 무서워 Ich habe Angst.(이히 하베 앙스트.)/ 안보여 Ich sehe Nichts.(이히 제-어 니히쯔.)/ 무슨 일이야? Was ist los?(바스 이스트 로스?)/ 떠나야 하네. Ich muss gehen.(이히 무스 게-언.)

추방당한 아빠는 이방인으로 딸과 함께 살아간다. 전쟁 와중에 딸은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빠는 떠나야만 했고, 부녀의 운명은 갈라졌다. 아빠가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 돌아올 수 없다는 것, 죽었다는 것을 억누른 세월만큼 인생살이가 버겁지만 차츰 아빠를 이해해 간다. 세상에 대한 분노, 저항이 일다가 이해의 폭을 넓히면 고독한 우울이 엄습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물질문명 속에서 가족이나 사회는 사치일 수 있다. 존재감이나 향방은 이방인을 닮아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떠난 자의 노래'는 아빠 윤이상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다. '떠난 자의 노래'는 '찢겨진 세월', '가상공간', '과거(떠나는 아빠)', '놀이와 눈물', '성숙(여인의 恨)', '사랑과 영혼(딸과 아빠)'의 여섯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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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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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정길만, 춤연기와 안무에서의 주도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무용의 중견 춤꾼이다. 무용단의 작품 이외에도 국립창극단의 '서편제' '모노판소리-정금씨&호박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뛰다, 튀다, 타다', 경기도립국악단의 '내 생애 소중한 선물', 연극 '찬탈', 뮤지컬 '죽은 시인의 사회' '갈매기'의 안무를 맡아 춤의 크로스오버로 작품성 향상에 일조했다.

■ 찢겨진 세월

앞을 보지 못하는 여인, 몇 십 년이 흘렀다.

환청, 환영에 흐느낀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아빠의 기운

그 동안 참아왔던 보고픔이 뚫고 나온다.

그리고 나의 유년시절의 모습, 그렇게 아빠는 사라졌다.

■ 가상공간

앞을 볼 수 없는 것, 혼자 걷는 길, 익숙해도 알 수 없는 길

분노가 치밀고, 저항하고, 고독하고 우울해진다.

화분을 응시한다. / 작곡가인 아빠와 가상 인물들

차 향기가 나를 사로잡는다. 생각의 저편 / 저편에서 아빠는 딸을 응시한다.

아빠와 축배의 시간 / 너무도 잘 커줬다. 떠나야 한다.

아빠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 떨어진 모자, 죽은 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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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만 안무의 '떠난 자의 노래'

■ 과거(떠나는 아빠)

유년시절의 딸. / 떠나는 사람들 사이로 아빠의 간절함이 묻어난다.

어딘가를 본다. 말을 하고, 만지고, 웃고, 울고, 춤춘다. / 아빠와 떠나는 사람들

고요해진다. 불길하다. / 혼란스러운 아빠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아빠의 버림 / 떠나야만 한다.

난 버려졌다. / 그게 딸을 살리는 것이다.

■ 놀이와 눈물

낯선 친구와 현실

손바닥을 치고, 그 소리의 여운을 쫒는다.

구두 발, 기침소리, 떠날 때 아빠의 기억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거울 속의 아빠, 입김을 불어 넣는다. 사랑해요 아빠.

너무도 보고픈 사람. 너무도 사랑을 받고, 주고 싶었던 사람

■ 성숙(여인의 恨)

찢겨진 아빠의 살결만큼이나 서른 해는 너무도 가혹하다.

억누르는 세월만큼이나 버겁지만 깨달아간다.

회상에 잠긴 여인 /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 사랑과 영혼(딸과 아빠)

이제 놔드려야 한다. / 이제 놔줘야 한다.

이제 잊어야 한다. 아빠의 모든 걸 / 그게 딸을 살리는 것이다.

나의 삶을 살 거예요 / 이제 좀 쉬려한다.

사랑해요, 아빠. / 딸아.

창공에 입김을 분다. / 우리 딸 사랑해! 영원히(자막)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없는 기자

장석용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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